실패하면 인생이 끝나는 걸까?

많이 실패해보라고 말하는 이유

by 하원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산 사람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 경험이 독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더 큰 성공을 이루어 낼 것이다.
나는 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그냥 내 삶과 내가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가장 개인적이고, 솔직하고, 내밀한.

내가 기억하는 내 실패의 첫 경험은 6살 무렵이다. 나는 그때부터 학생 시절 내내 어딘가 모르게 겉도는 사람이었다. 온전히 속해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와 어린이, 청소년에게 친구와 또래 집단은 부모 다음으로 자신의 큰 세계이다. 때론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하고, 그게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나한테 친구 관계는 꽤나 큰 실패의 역사였다.

친구가 없어도 나름 잘 살고 있는 거라는 걸, 그리고 그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혼자여도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사는 게 더 편하고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세상도 주변도 나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향성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채였다.


두 번째를 뽑자면, 가족 관계였다. 내가 22,23살 무렵까지 우리 가족은 어쩌면 사실은 남보다도 못할 때가 꽤 많았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또 고질적인 이유로 끊임없이 부딪혔다. 사실 가족 관계가 먼저인지 친구 관계가 먼저인지 헷갈리긴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가족 관계와 친구 관계에서 실패한 경험이 서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지금도 미지수이다. 선을 봐서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서로를 잘 모르는 채, 데이트를 몇 번 하고 결혼했는데 역시 서로 잘 맞지 않으셨다.

연애를 하고 이 사람을 잘 안다 싶어서 결심하고 결혼을 해도 때때로 '이게 맞나....?' 싶은 게 결혼이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었다.

우리를 대하시는 태도, 삶에 대한 태도, 본인의 인생관에 대한 생각 모든 가치관이 거의 정반대였다. 성격도 성향도, 취향도, 에너지나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많은 면이 달랐다.

나는 그래서 '집'에 있을 때 자라는 내내 혼돈과 혼란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늘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대개는 부정적이었고, 회의적이었고, 문제나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 성향이 크셨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늘 주무시거나, 티브이를 보시거나,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가시거나, 밥을 드시거나, 화를 내셨다. 아빠가 웃는 경우는 티브이를 볼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아빠와 무언가를 함께 한 기억은 6살 때 아빠 수업이 있어서 아빠께서 참관하러 오셔서 같이 장구를 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에 갔던 기억, 명절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갔던 기억, 졸업식날 같이 밥 먹은 기억, 중학생 때 회사 가는 길에 나를 내려 주셨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속에서 아빠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물론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나한테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난 늘 아빠가 무서웠고, 미웠다.


그 이유는 엄마한테서도 찾을 수 있다. 가족 문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빠가 화를 내시면, 엄마는 그걸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하셨다.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나에게 왔다. 나는 엄마에 대한 기억도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내 많은 상처의 원인은 대개 엄마로부터 나온 것들이 많다. 내 콤플렉스의 기원이 엄마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엄마는 나랑 오빠를 끊임없이 디테일한 면까지 비교했다. 속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오빠가 듣는 앞에서도, 내 앞에서도, 남의 앞에서도 확인 사살을 시켜 주듯 오빠의 우월함과 나의 평범하지도 못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빠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엄마는 입버릇처럼 내게 말씀하셨다.

"너도 오빠처럼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아빠도 엄마를 힘들게 하는데 너까지 엄마한테 그러면 엄마는 살 수가 없어. 네가 엄마를 많이 도와줘야 해."

내 나이 열두 살 즈음이었다. 돌아보면, 내 내면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 말의 영향이 꽤 컸던 것 같다.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착하게 살지 않으면 우리 가정이 파탄 날 것 같은 위기감이 계속해서 고조됐다.

나는 계속 참아야 했고, 내 힘듦을 온전히 나 혼자 짊어져야 했다.


아빠는 당시에 오빠와 나에게 관심이 없으셨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뿐 우리에 대한 애정이 없으셨다. 우리는 아빠의 비위를 절대 상하게 하면 안 됐고, 집에 있는 내내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아빠는 지금도 내게 엄마가 우리에게 헌신적이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매일 엄마가 넋두리를 하는 걸 들어주느라 내가 학교에서 어떤 점 때문에 힘든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내가 겪은 가장 큰 문제는 오빠였다. 괴롭혔다 표현하기엔 매일 내가 무너지게 한 사람이다. 그런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가볍다. 거의 이유가 없었다. 내가 뚱뚱해서, 어쩌다가 눈이 마주쳐 버려서, 그 시간에 그 집에 있어서, 그런 이유들로 수도 없이 맞았고, 바닥에 던져졌고, 목이 졸렸고, 경멸하는 눈빛과 태도, 멸시와 이죽거림을 들으며,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폭언을 거의 매일 같이 들어야 했다.

주로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에서 그런 상황이 일어났고, 계실 때에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용돈을 빌려 간다면서 갈취하기도 했고, 주지 않으면 맞았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악질인 것은, 가족을 신고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부모가 아니라 형제인 경우에는, 나의 경우 부모가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 나는 괴롭힘 당하고 있음을 이야기했으나, 사춘기 때 으레 그러는 거라고 넘기는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최선을 다해 정말 좋은 성적표와 상장을 가지고 왔을 때와 오빠가 단지 학원에 갔을 때 그 태도를 보면서 내가 오빠를 신고한다고 해서 세상과 부모님이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 버렸다.


더 끔찍한 것은 이렇게 묻어 두고 지나가면, 시간이 흘러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집에서 계속 얼굴을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에게 '용서'를 종용받곤 한다.

'그런 상황을 알지 못했던 부모님을 용서해라, 오빠를 용서하고 네가 좀 더 다가가라.' 등등.

벗어나고 싶어도 때때로 나를 짓밟던 그 시선과 욕설과 아픔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것을 나만 알기 때문이겠지.


세 번째는 대학 입시였다. 오빠가 부모님이 생각하던 만큼의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한창 반항심에 대학을 안 가겠다 마음먹고 1학년을 대충 보냈던 내게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도 오빠처럼 집에서 통학하기 어려운 학교 갈 것 같으면 대학 안 보낸다. 등록금도 알아서 해.

화가 났다. 정말 분에 못 이겨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 내가 왜 대학을 못가야 하나 단전에서부터 화가 끓어올랐다. 거의 집착에 가깝게 무식하게 공부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통학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모두 공부했다. 잘 때 빼고는 날 보는 사람들이 다 정말 독하다 싶을 정도로, 독기를 품고 공부했다.

그런데 1학년 때의 성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대학에 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또 한 번 자격지심이 생겼다. 내 세계가 무한히 흔들렸다.


네 번째는 꿈이었다. 나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며 모두가 만류하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고, 역시나 모두가 만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크게 후회했다. 나랑 정말 안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방향성이 너무 달랐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글을 잘 쓰는 법이었으나, 문예창작과에서 떨어져서 간 국어국문학과는 정말 학문을 배우는 학과였다. 나는 전공과 함께 내 꿈도 같이 잃어버렸다. 현실과 타협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꿈을 온전히 버리진 못하고 이리저리 정처 없이 방황했다.


다섯 번째는 유튜브였다. 유튜버가 되겠다며 무턱대고 도전했다가 역시 실패했다. 5번 정도 채널을 열었다 닫았다 했고, 조회수가 2자리가 나온 적도 많지 않았다. 그게 또 나한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수많은 순간에 죽고 싶었다. 이전에 나의 우울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말했듯 숨 쉬듯이 죽고 싶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다. 나는 그리 단단하지 못했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나 혼자 감당하는 데 익숙했다.


당시엔 쪽팔리고, 너무 아프고 어쩌지 못해서 끌어안고 때때로 남에게 그 칼날을 겨누기도 했는데 지금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팽팽하게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문제들도 많지만, 그마저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어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됐다.

엄마 아빠는 서로를 이해하고 가장 친한 친구처럼 지내고 계시고, 엄마와 아빠에게 그동안 힘들었던 점을 털어놓고 서로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 일정 부분 화해하고, 일정 부분은 또 이해하려고 같이 노력하고 있다.

오빠는 최소한 부딪히지 않고 있다. 회피하는 게 나답지는 않은데 이 문제는 아직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대학을 졸업했고, 학위가 2개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나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가 됐다.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매일 글을 쓴다.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구독자가 늘고 있고, 이번 주 조회수가 3만 회를 넘겼다. 영상을 만들면서 기획하고, 또 이렇게 브런치에서도 글을 쓴다. 내 아이덴티티를 작가 또는 글 쓰는 사람으로 설정할 만큼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많이 꾼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현실과 타협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꿈을 현실로 데려 오기 위해 맞서고 있다.


내 인생은 사실 실패의 역사이다. 숨 쉬듯이 실패하고 절망하고 패배했다. 낙오되고 도태되는 기분도 익숙하게 느낄 만큼 겪어 봤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실패의 역사가 이제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젊고, 내가 겪을 일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에 대해 왈가왈부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지적은 아직 듣고 싶지 않다. 어떤 선택이든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할 것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60이 넘어서도 배우고 하루아침에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나는 이 의견에 동감하고, 그래서 남의 인생에 되도록 참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쉽지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아 보려고 한다.


하여튼, 실패로 점철된 나의 삶은 꽤나 불행했지만 성취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나 또 그런 생각도 한다. 아이는 어리광을 받아 줄 사람 앞에서만 운다고 한다. 나는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넘어졌을 때 빠르게 일어나는 법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체화시켰다.

필연적인 결과였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냥 나의 경우에는 내가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나만큼 아파하거나 슬퍼해 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힘든 것들을 오로지 내 힘으로 내가 스스로 짚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보다 빨리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나를 일으켜 줄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 받아들여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꽤나 절망적이고 아프다.


그러나 빌어 먹게도. 실패하고 그 상실감에 허덕이면서 바닥에 나뒹굴 때조차도 내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빌빌거리고 있어 봤자 나 스스로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아무리 피칠갑을 하고 마음이 문드러지고 있대도 내 인생이 마음처럼 그 순간 블랙아웃되진 않는다.

인생은 계속된다.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있더라도 그걸 잡고 일어나야 하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사람도 나뿐이다.


나는 내 인생을 계속 끌고 가야 한다.

빨리 실패를 수습하고 보다 더 나은 결과로 만들기 위해서,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우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게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엔 어떻게든 나는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는 자신감과 신뢰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회복 탄력성이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실패의 경험을 성공의 경험으로 다시 재바꿈하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는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인생의 주도권을 계속 내가 키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부 중 변함없을 가장 큰 성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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