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쓸까? 글을 쓰는 이유 3가지.

'그냥'이라는 이유 말고

by 하원

얼마 전 1년도 전에 쓴 글이 갑자기 조회수가 오르더니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부정적인 댓글이었다.

남의 말과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 편이지만, 악평들에 마음이 저렸다.

내 일기장 같은 글이 누군가에 가 닿는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글이 상처로 가 닿았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쓰렸다. 마음이 계속 쓰였다. 무언갈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말과 의견들이 맴돌았다.


말과 글의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함부로 말하지는 않았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동안 글 한 자 적기도 겁이 났다. 섣불리 내 생각을 적었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졌다.

개복치 같은 나의 성격이 마음속 깊이 숨어있다가 드디어 옳다구나 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언가 대단한 글을 써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일단 쓰고 봐야 글이 늘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도 아무 글이나 적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으로 우회하려고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크게 2가지였다.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또는 창작물을 왜 만드는가?

영향력이란 무엇인가?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그때 유튜브 얼반 노이즈라는 채널에서 이런 내용을 봤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생각해봤다. 내가 전달하려는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 대답은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였다.

나는 쓰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만들어 표출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 같은 것이다. 살아갈 의지와 같은 것이다.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것들, 누구에게도 미처 다 하지 못하는 것들을 쓰고 또 쓴다.

누가 봐주길 바라면서도 아무도 보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쓰고 또 쓴다. 살아있기 위해서 쓴다. 내가 기록하는 한 나는 일보 후퇴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쓴다.

슬픔도 기쁨도 모두 적는다. 휘몰아치는 감정도 반짝이며 떠오르는 영감들도 마구 적는다. 그건 나의 일부이고, 때론 전부가 담긴다.


내가 전달하려는 가치는, 결국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나는 누군가가 쓴 글을 보며 위로받았다. 감명받았고, 내 정서의 많은 부분에 수많은 글들이 차지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밤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들의 많은 시간들 덕에 나는 그들의 시간을 보기 위해 살고 싶은 마음으로 옮겨 갔던 것 같다. 드라마, 영화, 예능, 책, 유튜브 등등 글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들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쁨이고 행복이고 사랑이 되진 못하더라도 하루 끝 위로가 되고 싶었다. 잠시라도 살아갈 이유가 되고 싶었다.


결국 내가 전달하려는 근본적인 가치는 위로였다. 용기였고, 아주 작은 원동력이었다.


다시 나를 돌아봤다.

무엇인가를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근본적인 이유보다 피상적인 현상들에 매몰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어느 순간 나도 으레 '해야 하니까'하는 일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책임이 나한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또 영향력을 끼친다는 건 엄청난 권력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확 와닿았다.


최근에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지금은 '오월의 청춘'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두 작품 다 시대극이다. 비극적이고, 주인공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들에 처해있다. 이 드라마들을 보면서 많이 하게 된 생각은, '영향력' 또는 '권력'에 대한 것들이었다. 조선의 국력, 미군과 일본인, 일군으로 대표되는 미국과 일본의 국력, 양반과 양반이 아닌 자들, 보안부, 시위대, 부자와 부자가 아닌 자, 권력을 가진 자와 아닌 자. 그 사이에 기구한 운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과 영향력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와중에 만난 깊은 이야기들이었다.


솔직히 여전히 나는 그것들이 무엇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직은 그것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기엔 내 역량이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된다면, 함부로 휘두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쓸 때도 그냥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더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함부로 조언하지 말고 내 경험을 들려주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자고 생각하게 됐다. 또 더 큰 부나 더 큰 권력, 그것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이득을 볼 수 있더라도 눈앞의 이익을 좇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내가 가지게 되는 권력 또는 영향력을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잠시 나를 거쳐 가게 되는 것이다. 나를 거쳐서 다른 사람에게 가 닿는 영향이 보다 선한 것이었음 한다. 보다 의미 있고, 질 좋고, 위안이 되는 것이길 바란다.


나는 경계에 놓인 사람이다.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영감과 고뇌, 덧없음, 위로와 한탄, 긍정과 부정, 불안과 평온, 얇디얇은 종이 한 장 차이의 경계를 쉴 틈 없이 오간다.

본디 주된 정서가 밝지만은 않아서, 후천적으로 사고 회로를 바꾸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케이스다. 그래서 나는 내 글도 내 영향력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쁨과 행복 그 무언가는 못되더라도 그 길목에 있는 작은 위로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실수할 수도, 또 가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단 걸 안다. 그게 때론 몹시 괴롭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나를 본다.

참 다행히도 나는 그때마다 "그렇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러나, 그래서" 한다.


기죽지 않는다. 잠시 무너져도 어떻게든 털고 일어난다. 내가 뱉은 말을 어떻게든 책임지고 증명해 보여야 하니까. 그게 나다운 거니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존중해. 근데 나는 나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걸 꺾으려고 하는 사람들한테 내 생각도 맞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하면서 일어나는 게 나답다.


굳센 내가 때론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때때로 쓸모가 있고, 쓰임이 크고, 기특하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믿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갈 것이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귀감이 되는 글을 쓰고,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당신 나름의 이유들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듯 수많은 '왜'에 대한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면서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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