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2배 더 행복하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졸업 때문에 떠난 여행

by 하원
나는 여행을 별로 가본 적이 없다. 집 밖에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막상 나가면 좋을 걸 알면서도, 내 방에 머무는 게 나의 관성적인 습관이다.

그럼에도 몇 주 전부터 준비해서 여행을 떠났던 생각이 난다. 첫 여행은 20살 6월이었고, 그다음은 21살이었다.


21살 강문해변에서

나한테 여행은 돌아보면 현실 도피였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정말 힘들어지면, 내가 겪은 일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때에 여행을 갔던 것 같다. 일종의 보상심리가 들 때 여행을 갔다. 떠나기만 하면 내가 겪은 일들이 별 일 아닌 듯 훌훌 털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서 물론 그런 홀가분함을 얻어 올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얻어 오게 됐다. 혼자 여행이 아닌 여행은 오히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소한 것들도 크게 서운하게 느껴졌고, 그 사람이 다시 보이게 됐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눈치 채지 못했나 싶어서 더 큰 고민을 낳았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여행이 여태까지 거의 없었다. 지치고 힘들고 짜증 나고 괜히 왔나 싶고 서운하고 눈치 보이고 그런 여행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2월 중순, 휴학 기간까지 합쳐 5년을 다닌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니다.

졸업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꽤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꾸려 나가고 싶은지, 묻고 또 물었다. 브런치도 2020년 2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3년째다. 이 공간도 내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인생이란 여행 중에 길을 잃은 느낌이다.

난 꽤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 잘 살고 있는 건지 꽤나 혼란스러웠다.

요즘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카테고리에 관심이 있는지 명확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할 줄 아는 범주, 아는 범주를 열심히 늘려오기만 했지, 좁힐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으로 따지자면, 나는 이제 길도 잘 찾을 수 있고, 무거운 짐을 미리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도 되는지 물어봐서 짐을 맡겨 놓고 돌아다닐 줄도 알고, 택시 기사 아저씨께 맛집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원만하게 갈등을 넘기고 더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지, 어떤 것들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 더 재밌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지 이런 모든 것들을 알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그중에 어떤 걸 가장 선호하고 좋아하는 지를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거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면서 국문학과에 들어가 국어학과 문학, 문화 콘텐츠 등등 글 쓰는 능력과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웠다.

동시에 출판 편집과 희곡도 배워서 출판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안다. 연극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시나리오랑 희극은 어떻게 쓰는 건지 그 과정과 방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사진과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디어과에서 복전을 했다.

그래서 영상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법, 3D 디자인(게임 디자인, 핸드폰 디자인), 썸네일 만드는 법, 영화와 영상 분석하는 법, 유튜브 채널 분석, 좋은 제목 짓는 법, 사운드 아트(사운드 코딩), 드론 코딩(원격으로 드론 조종하는 방법, 파이썬 기초), 팀으로 짧은 영화 만드는 법,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을 배우고 능력을 길렀다.


동시에 다이어트를 하면서 퍼스널 브랜딩과 SNS 마케팅, 브랜딩 그 자체, 서비스 기획에도 관심을 가졌다.

미디어과가 평범한 미디어과가 아니라 융합학부 아래에 있는 차세대 미디어과라서 창업 관련 수업도 많이 했기 때문에 창업 특강을 들으면서 창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작가가 되기 전 꿈이 패션 CEO였기 때문이다.

졸업하기 위해선 사업 계획서를 써야 했고, 그 사업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나는 전자책 어플을 기획했다.


문제는 여기 있었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너무 광범위하게 많아졌다.

그리고 관심을 한 곳에 쏟을 수가 없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었었다.

잘하는 건 많았지만 그중에서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었다.

잘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았지만 그중에 하나만 골라잡으라 하면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뾰족함을 잃었다.

내가 가진 큰 무기가 자기 확신이었다. 그리고 내가 뭘 좋아하고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내가 뭘 좋아한다고 카테고리를 정확히 짚어내질 못하고 있다.

졸업은 나에게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분야 확장을 줄이고, 카테고리를 좁혀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명확하게 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글도 길게 늘여 쓰는 건 잘하지만, 짧게 줄여 쓰는 걸 못하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나를 고르지 못해서 모두를 포기하거나, 모두 사버리는 나로서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12살부터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김없이 글부터 쓰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할 때에도 영상을 만들 때에도, 사진을 찍을 때에도, 우선 글부터 쓴다.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품을 만들고 나서도 나는 글로 그것을 다시 한번 표현한다.


내 정체성은 궁극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배워 온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나를 표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내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과 생각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표출하고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는 과정을 진심으로 즐겁게 생각하고 즐긴다. 나는 그것만큼 짜릿한 게 없다.

좀 더 전달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글, 말, 사진, 영상, 코딩, 마케팅, 브랜딩 같은 분야였던 것이고, 결국 내 표현법은 글로 귀결된다.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낸다.

막 학기를 종강하고 3개월이 넘게 끊임없이 고민했다. 나는 정말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가. 뭘 좋아했고, 지금은 뭘 좋아하지? 생각해봤다.


나는 여전히 눈물 나게 글 쓰는 일이 좋다.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독자나 구독자와 소통하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짜릿하다.


나를 여행한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다.

전엔 누군가가 자신한테 별로 관심 가져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 (어쩌면 겉으로도 너무 티가 났을 법하게)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알겠다. 가능한 일이다.

눈앞에 닥쳐 있던 능력치 키우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나도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어떤 분야를 좋아하는지 카테고리를 정하진 못했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굳히고 찾게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마음먹는 건 욕심이란 걸 안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마음에 좀 더 귀 기울여 보려고 한다.


'여전히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다시 작가의 꿈을 꾸기로 한 지금처럼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감정들과 성장기를 세세하게 기록해 볼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도,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작가를 꿈꾸는 사람'도 많겠지만,

'국어국문학과 1인 미디어(유튜브)를 전공하고 유튜브를 하면서 회사에 다니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 혼자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특성, 강점에 더 관심을 쏟으려고 한다. 그게 누군가한테는 영감이 되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이 된 후로 줄곧 나는 혼자 일해 보겠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살아본 다음, 사업을 하든 취직을 하든 하겠다고 말했다.

인생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된다고 하더니, 진짜 그렇다.

내가 말했던 대로 나는 한국인이지만 갭이어의 개념을 차용했다. 2022년 동안 나를 여행하면서, 커리어를 좁히고,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록이 큰 힘이 되어 줄 거란 걸 안다.


만약 내가 프리랜서로서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실패이지 평생 가는 문제가 아니다. 기록을 남긴다면, 취업을 준비하고, 나의 삶을 증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란 걸 안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프리랜서로 도전해도 되는 문제이다. 일단 지금은 여행 중에 길을 잠시 잃었기 때문에 GPS를 켜고 방향을 찾는 중이다.


'어떤 분야에 가장 흥미를 갖고 덕질할 수 있을까?'를 말이다.


오덕이 성공하는 시대가 됐다. 나는 어떤 것을 열렬하게 사랑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올해는 그걸 정하고 싶다. 그 경험을 나누면서 같이 성장하고 싶다.

그게 졸업 덕분에 시작된 여행인 것 같다.

끝에 뭐가 남을지 불안하기도 하지만, 기대가 된다.


또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취업 때문에, 미래 걱정 때문에 나처럼 재미없고 심심하게 살지 않도록, 마음껏 자기 자신을 여행하면서 청춘을 보내도록 내가 잘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도 크다.


'퇴사 후 월 1000만 원을 버는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은 이제 좀 흔해졌는데, '입사 전 월 1000만 원을 벌던 프리랜서'는 흔하지 않으니까.


아직 선점되지 않은 키워드를 선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여행은 도망이나 현실 도피가 아니라, 해답을 찾는 여행이고 싶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실패하면 인생이 끝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