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뻔해 - Kassy
우린 왜 뻔해졌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왜 당연해졌을까?
왜 그렇게 무심해졌을까?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서로 함께 하는 게 조금도 당연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처음엔 우리도 언제라도 관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말을 가려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에도 많은 생각을 하고 행동했었다. 배려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존재하는 게 당연해졌다.
'이렇게 해도 이해해 줄 거야.',
'얘한테는 이렇게 해도 돼.'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갔다.
그 마음이 커지면서 균열이 생겼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땐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할 만큼 유독 많이 긴장했다.
때문에 인상이 차갑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그도 나를 어렵게 생각해 거리를 뒀지만, 우연히 대화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한 날에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연락 두절 상태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도 되고 당황했다.
이후 마주쳤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대해서 화가 났다.
나중에 나와 함께 하는 게 반복되자 그걸 '약속'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 번은 그의 대학 근처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지금 친구들을 더 친밀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건데도, 서운했다.
기껏 그와 멀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에게 찾아가기까지 했는데, 어쩐지 더 멀어졌다고 느꼈다. 서운한 감정은 점점 증폭되었다.
반년만에 시간과 장소를 조율해서 만났던 날이었다.
그날 내내 그는 핸드폰을 보면서 다른 사람과 연락했다.
그러다가 통화하러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와서도 계속 통화만 했다.
그가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코드가 잘 맞아서 같이 있음 재밌었는데 우리는 어느새 코드가 비껴가고 있었다.
겹쳐져 있던 세계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에게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 때, 연락하면 그가 언제든 위로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사이였으니까.
그와 만나기 전에, '지금 이러이러한 이유로 너무 우울하고 화가 나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가 통화하는 모습이나, 이후에 나한테 대하는 태도에서 나의 심리 상태까지 살필 여유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힘든 것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것 같았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서로가 큰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으려 했고, 그대로 되지 않으려고 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그동안 쌓아 둔 감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해가 쌓이고, 입장 차가 벌어졌다.
관계를 다시 어떻게 바꿔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노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통화를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다.
통화를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 순간에 우리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느꼈다.
괜찮다는 건 조금도 괜찮지 않다는 뜻이었다.
'조금 더 참아 볼게.'와 다를 게 없었다.
관계를 좋은 쪽으로 옮겨 가기에는, 그간의 일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 괜찮은 상태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쳐 버렸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아버린 마음 상태라서, 그의 곁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한테 그만큼의 마음을 내어주기엔 너무 멀어졌다고 느꼈다.
멀어진 걸 여태 나만 몰랐던 것 같았다. 아님 나만 부정해 왔거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야속했지만,
이대로 괜찮은 채로 지내봐도
우리는 결국 끝을 향해 저물어 갈 것 같았다.
조금 비겁하지만 발을 빼버렸다.
내가 오해한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나를 오해한 부분도 많았을 거다.
일일이 꼬인 매듭을 풀기를 관두었다.
더 못나고 못된 모습을 보이기 전에 먼저 거리를 두었다.
조금 더 함께 한다면, 진짜로 크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후회할 말을 던져 버리게 전에, 먼저 선을 그어버렸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그러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게 중요하지도 않다.
애초에 관계는 상호적이니까 누구 한쪽에 의해 어떤 변화나 흐름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그에게 밝고 활기차고 분위기를 사로잡는 모습만 보여 왔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나 자신과 그와의 관계에 현타가 세게 찾아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고정되었고, 나는 그걸 견디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다.
'더 노력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바꾸기엔 이미 늦어버렸단 생각이 들었다.
우린 너무 고정된 채로 굳혀졌다. 그리고 마음은 변해가고 있었다.
나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면모를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내 이런 면도 다 사랑해 줘'라고 구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관계가 그런 사이인 적도 없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태도를 바꿔서 내 모든 면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도들이 오히려 불편함을 쌓는 것 같았다.
서로 원하는 모습이 딱 들어맞은 친구 관계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힘들어졌다.
힘들어하는 나를 포용해주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자책하게 됐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나'를 제대로 꺼내 놓은 적이 없다는 게 뼈저리게 아팠다.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겁이 나서 센 척을 하고, 웃고 다녔던 걸까.
왜 마음이 변하는 걸까.
왜 처음을 잊는 걸까.
왜 일면만 보여주고,
전부를 알아주길 바라게 되는 걸까.
왜 일면만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어느새 당연해지는 걸까.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 왜 당연한 것을 좇는 걸까.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한 건
조금도 당연하지가 않은데,
왜 마음이 변하는 걸까.
왜 우리도 뻔해졌을까.
왜 좋아한 마음도 아까워지는 걸까,
왜 더 좋아하는 걸까 봐,
나만 그대로인 걸까 봐,
겁을 내고 내 탓을 하는 걸까.
그냥 좋으면 좋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나보다 더 친한 사람이 많아서
질투 나면 질투 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왜 말을 못 하고
자존심만 부리면서
혼자 우는 걸까.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사소한 일이 쌓이면
왜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고 마는 걸까?
왜 누군가에게
당연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것 같을 때
이토록 분노하며 불안해하고
관계를 망쳐버리는 거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모르겠다.
답할 수 없었다. 너무 이리저리 엉켜버린 문제 같았다.
버림받기 전에 버리겠다는 마음이었나.
불안을 어쩌지 못해서 불안을 던져버린 건가.
기다려야 했다.
왜 이런 문제를 겪을 때마다 비슷한 패턴으로 상처받고, 두려워하고 겁을 내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지 내가 나한테 말해줄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기다려야 했다.
이제껏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일을 내가 나한테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상처받은 나부터 들여 보기로 했다.
그래야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고, 나도 덜 상처받으며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한테 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 그렇지.'란 말을 더 이상 들려주기 싫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믿음을 불러오고 싶었다.
그래야 무너져있는 나를 내가 다시 어떻게든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잃어버린 나의 뿌리를 다시 찾기로 했다.
나는 새롭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