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Harry styles - Daylight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순 없다. 모두가 계속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도 없다.
애초에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봤던 게 맞긴 할까.
다른 듯 같은 줄 알았는데, 같은 듯 달랐던 것 아닐까.
이젠 엇갈려버린 채, 지나온 방향과 마음을 멍하니 살핀다.
사람은 변한다.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에서 여럿이 된다.
어차피 변할 것이란 걸 왜 그땐 몰랐을까.
어쩌면 철없이 너무 순수해서.
시간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조금도 종잡을 수 없어서.
영원을 믿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대도 우리는 그러지 않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서.
줄곧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이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면, 결국엔 영원할 거라 믿었다.
모든 오래된 인연이 끊긴 순간, 나의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오히려 서로를 할퀴고
무심해질 수도 있단 걸 알았다.
때때로는 잔혹할 만큼.
나는 학창 시절에 많이 겉돌았다.
나는 어디서도 행성이었다.
누군가의 주변을 맴돌거나, 어딘가에 섞이지 못하는. 신비롭지만 가까이하기엔 꺼려지는 어두운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너에게 닿기를>의 사다코 같은 캐릭터였달까.
그러다 우연히 그와 친해졌다.
대화를 나눠 보고는 내가 꽤 괜찮은 친구라고 받아들인 듯했다.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건 노력이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희생'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주기별로 미리 약속을 조율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일이 약속을 조율하는 역할을 내가 맡았다.
처음에는 만나면 좋으니까 좋은 마음으로 나서서 중재하고 타협하고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어느 순간, 내가 그걸 맡는 게 당연해졌다.
그래도 좋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면 늘 즐거웠으니까 그걸로 만족했다.
시간이 흘러 서로 완전히 환경이 달라졌다.
이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게, 나뿐인 것 같아서 종종 외롭고 서운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우리가 변하는 걸 막아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지쳐 버렸다.
당연해진 역할을 내려놓았다.
먼저 연락하길 그만뒀다. 내가 버려진대도 괜찮았다.
내 존재와 역할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거나, 알아차리거나, 이미 그렇게 느꼈다면, 먼저 연락할 거라 믿었다.
금세 채팅방은 고요해졌다.
그동안 뭘 겁내 온 걸까. 전화번호를 정리하고, 단톡방을 나왔다.
씁쓸하고 아리지만 후련해졌다.
후에 그에게 연락이 먼저 왔다. 그때 고마웠고, 날 참 좋은 친구로 생각했다는 인사와 함께.
그와는 잠시 부쩍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 친하게 지냈던 애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운명이라고 믿었지만 그저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 순간에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로 인해서, 나와 그가 인연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반대여도 그렇고.
어쩌면 처음부터 서로 다른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서로를 속이며 착각해 온 걸 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한 마음의 깊이나, 앎이 제각각 달랐다.
오래됐어도 해지고 낡은 관계가 있고, 더 태가 나고, 특유의 생활감이 묻어 오히려 기품이 스며드는 관계가 있다.
내가 오래됐다고 아끼는 마음은 때때로 미련이 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더 이상 같이 흐르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우리는 변했다.
더 해지기 전에 추억 속에 잠겨있지 않고 헤엄쳐 나왔다.
나는 내가 되기 위해서 그를 정리해 갔다.
그를 떠나보내면서, 점점 외롭고 지쳐 갔지만, 굴하지 않았다. 온전히 그와 멀어지는 연습을 했다.
그를 잃을지언정, 더 이상은 내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선택, 기호에 맞추는 것을 우위에 두지 말자고 계속 되뇌었다.
그 과정은 꽤 고됐다.
사람이 지겨워졌다. 사람이 좋은 나도 지겹고, 사람을 사랑하는 나도 지겹고, 사람을 사랑해서 나 좀 사랑해 달라고 구걸하는 나도 지겨웠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 하면 마음을 왜 꼭 밑바닥까지 끌어다 쓰는 건지, 왜 사릴 줄을 모르는지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버려지기 전에, 버리고. 버려지더라도 각오하고.
변하는 것과 변해온 것을 마주 보았다.
우리는 변했다. 우리는 끝났다.
이토록 무심한 사이가 될 줄 알았다면,
그래도
너는,
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함께하자고
말했을까?
인연을 맺었을까?
몰라서 좋은 게 있고, 알아서 좋은 게 있다.
사람은 변한다는 걸 모를 때엔, '영원'을 안다. '영원'을 믿는다.
사람은 변한다는 걸 알게 되면, '영원'을 잊는다. 모른다. 믿지 않는다.
나는 이제 영원을 믿지 않는다.
우연도 운명도 있을지 모르나, 영원은 없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배웠다.
어쨌거나, 사람은 변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변하는 건 어떻게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이걸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란 걸.
변화라는 무서움과 마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