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 강한 사람에게 표적이 되었을 때

한 명을 왕따 시키는 사람들의 특징

by 하원

BGM : 어긋난 화살 - 원호경





분위기는 누가 만드는 걸까?




한국 사회는 '관계주의'적인 특성이 도드라진다.


관계주의 속에서 '분위기'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한국인들은 언제라도 '분위기'에 맞춰서 상대방이 원하는 선택지로 내 선택지를 바꿀 의향이 있다.


그걸 눈치라고 하지.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은 따라서 힘이 생긴다.




힘은 권력이다.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내 뜻대로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 능력.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걸 알아차리고, 자신이 속하게 되는 집단의 분위기를 장악하려고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학교에 가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보다도 '분위기'가 모든 걸 장악하는 세계에 내가 잘못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걸.




내가 마주한 세계는 좀 이상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같은 나이, 비슷한 지역에 살아서 비슷한 학교에 온 아이들인 만큼, 가정 형편도 큰 폭으로 차이 나진 않았을 거다.




그 사이에서도 '분위기'를 장악하려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계급'을 나누려고 했다.


그 아이들은 어른들을 속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 또한 하나의 놀잇거리로 생각하는 듯했다.




가장 웃기다고 생각한 건, '외모'로 등급을 매겼다는 것.


마르고 뚱뚱하고, 예쁘고 못생기고, 화장을 하고 안 하고, 교복을 줄여 입고 안 줄여 입고.


거기에 인맥이 넓은 지 아닌 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덤이었다.


돼지, 소 등급을 나누듯 사람을 등급 매겼다.




그 속에 묻혀 있으니, 나도 어느 정도 물들어 갔다.


시끄럽게 굴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속으로 사람들의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던 거 같다.


자조적이지만, 항상 한편으로는 웃기다고 생각했다. 좀 같잖다고.




학급이 바뀌어도, 패턴은 비슷하고, 은근히 비열하다.


나는 그 분위기에 올라타지 못했다.




그는 반의 중심에서 농담인 척 아이들을 조종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항상 눈꼴셔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위에 설까 봐 상당히 불안에 떨어서 했던 행동들 같다.




반에서 돌아가면서 한 명을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곤 했는데, 그가 시샘하거나, 불안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나도 그보다 성적이 좋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자기 말에 복종하지 않으니까 "센 척한다, 나댄다."며 은근히 나를 따돌렸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친구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힘'을 만들고, 그 힘을 과시해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랬고.




그의 입김에 반에서 나는 같이 놀면 같이 놀림을 당할 것 같은 아이로 이미지가 굳어져 갔다.




특별히 눈에 띄게 나만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고, 괴롭힌다고 말하기에는 어중간했다.


따돌림이라기보다는 희롱이었다.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이 자존심 상하게 하는.




나는 최대한 조용히 지내는 쪽을 택했다.


그는 금세 심드렁해졌는지, 나를 갈구는 걸 그만뒀다.




나는 힘에 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할 만큼 어렸고, 거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그의 말대로 나한테 문제가 있나 싶어서 별다른 대항을 하지 못하고 1년을 보냈다.




그가 나를 우스운 존재로 만든 건, 겨우 몇 개월이었지만, 이미 찍힌 낙인은 벗겨지지 않았다.


나의 계급은 여전했고, 나에서 다른 아이로 타깃이 변했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외로웠고, 괴로웠다.




졸업할 때까지 그는 여전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와 다른 점이 있는 친구를 조금도 못 견뎠다.


정확히는 자기가 할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점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기를 즐겼다.




지금도 공공의 적을 1명 만들어,
기싸움을 하면서,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려고
애쓰면서 살고 있을까.




어딜 가도 그와 같은 아이들은 꼭 있었다.


그의 장단과 비위를 맞추면서 그가 가진 권력을 나눠 갖는 아이들도 꼭 있었다.




이 이상한 집단에서 나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사회에 나와서, 사회도 다를 것 없는 곳이 있고,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도 있다는 걸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흐름과 이유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도태되기도 한다.


소속되어 있는 게 항상 좋지만은 않다.


소속할 수 있는 곳을 고를 수 있다는 건, 어른의 특권일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 선동.


결국 이 모든 것은 ‘분위기’에 따라 움직인다.


'분위기'는 어쩌면 '여론'이지 않을까.
분위기 메이커는 어쩌면 '여론 메이커'고.




어떤 순간에도 다시는 분위기에 잡아 먹히지 않을 테다.


세상의 뒤틀린 부분에 파장을 일으키며 살고 싶다.




연대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누군가를 소외시킴으로써, 자만심을 채워 넣는 사회를 다정함으로 무찌르고 싶다.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절이란 걸 떠올린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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