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텅장이 되는 이유

'한정판' 좋아하세요? 시즌제의 역습

by 하원
한정판, 같은 물품이어도 왜 잘 팔릴까? 아니, 나는 왜 또 그걸 사러 가고 있나?


어젯밤, 오랜만에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까지 딱 3시간 잤는데 아침 7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불면의 밤은 괴롭다. 늦게 자는 것이 다음 날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피곤함에 시달릴지 알기 때문이다.


어제저녁에 SNPE를 한 시간 반 가량 하고 핸드폰에 쌓여 있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보내고, 유튜브를 보고, 모기를 잡았다. 그렇게 4시까지 잠을 못 잤다. 밤에 배가 너무 고팠다. 먹을 만큼 먹어줬는데도 배가 고팠던 건 많이 움직여서 보상 심리적인 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적게 먹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2 주 간의 고민 끝에 비비 해이(BBHAY)를 가기로 결심했다.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다이어트 계정을 통해 알게 카페인데 프랜차이즈점처럼 디저트 시즌제를 한다.


계절 별로 신메뉴를 내고 그 기간 동안에만 해당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계속 끊이지 않고 생각났다.

맛에 대한 설명도 잊히지 않았다. 먹고 싶었다.


그리고 저번에 진짜 맛있게 먹었던 &meal에서 한정수량 판매하는 트러플 매쉬 포테이토 바게트도 먹고 싶었다.

같은 성수동이어서 가는 김에 다 갈까 2주 간 심각한 고민 끝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온다는 변수가 있어서 망설였지만, 오늘 엄마 생신이시기도 해서 생신 케이크로 사서 나눠 먹어야겠단 생각으로 집을 나왔다.

전철을 환승하려고 기다리는 동안에 오픈 시간인 11시가 되어서 예약 전화를 했다.

그리고 11시에 성수동의 편집샵인 폴라 앳홈 (@polaathome)에서 2019년 한정판으로 출시했던 그릇을 사려고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티켓팅에 실패했다.


방금 전 왜 거의 20분 동안이나 서서 전철을 기다렸는지 깨달았다. 구로에서 신도림으로 딱 한 역만 더 가면 되는 거였는데 KTX 광명 기차가 지나가는 곳에서 왜 차가 안 오는지 답답해하면서 계속 시간을 체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바보짓을 했다. 덕분에 이 글을 이만큼이나 썼지만 말이다.


이렇게나 '한정판'과 '시즌제'의 유혹은 무서울 만큼 강력하다. 지금 잡지 않으면 다가올 미련과 후회로 점철될 미래가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아니면 안 돼! 지금 아니면 없어!



다시 오지 않을 찬스


이것이 놓치면 바보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래서 한정판을 산다. 그래서 팔린다.


오늘의 아침! 마나 올라나에서 포장한 클럽 샌드위치와 머시룸 치킨 샌드위치. 요즘 빵 귀신이 붙었나. 빵이 당긴다.

그리고 성수동에서부터 1시간 반, 왕복 3시간, 헤맨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4시간에 걸쳐서 모셔왔던 귀하신 '한정판'과 '시즌제' 아이들.

&meal의 11월 신메뉴 (일 한정 수량 15개)인 트러플메쉬포테이토. 이걸 먹고 거기까지 다녀오길 잘했다. 뻘짓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10월 한정 메뉴였던 청양애플브리바게뜨는 정말 맛있었지만 약간 아쉬운 면도 있었는데 이것은 진짜 찐이다!!!!!! 청양애플브리바게뜨보다 훨씬 맛있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떠오른 건데 엔드밀은 구황작물 메뉴를 시켜야 진짜 신으로 감격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번에 먹은 바질 크림 고구마 파니니가 정말 맛있었던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비비해이(BBHAY)의 가을 시즌 메뉴, 왼쪽부터 마마파이, 메이플무화과, 흑임자펌킨베리, 콜비잭, 데블스치즈케이크


진짜 맛있다. 비비 해이는 찐이다라고 생각했다. 먹으면서 또 먹고 싶었다. 성수동 악개가 되어야지. 성수동에서 나중에 살아야지. 여기에서 작업실 얻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저번에 이어서 또 했다. 이번엔 그중의 8할이 비비 해이 때문이다. 매일 가서 매일 먹고 싶은 맛이다. 진짜 하나같이 다 예쁜데 맛이 진짜 미쳤다. 맛있다는 말로는 모자란데 맛있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 맛이다. 시간이 있다면 시즌 메뉴가 끝나기 전에 또 가서 먹어보고픈, 나만 알고 싶고 숨겨두고 나만 가고 싶은 케이크 맛집으로 등극해버렸다. 진짜 맛있다.

카페 분위기도 너무 예뻤는데 중간에 카메라가 꺼지는 바람에 매장 안을 못 찍은 것이 정말 한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또 와야지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충분히 성수동까지 가서 있다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랑 같이 가는 것도 좋겠지만 혼자 오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다른 사람한테도 알려주고 같이 데려오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동시에 드는 곳이었다. 딱 잘라서 내 취향이었다.

너무너무 맛있다...... 그래서 금요일이 엄마 생신이신데 금요일엔 새벽부터 김장하러 내려가셔야 해서 오늘 사 왔는데 참지 못하고 생일 축하 노래만 불러드리고 먼저 먹었다. 그런데 진짜 맛있어서 거의 절반은 내가 먹었다. 그렇게 먹고 있으면서도 또 사러 가고 싶은 맛이었다.


데블스 치즈 케이크. 초코를 안 좋아하는 나도 초코 악개로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비비 해이는 찐이다!

이걸 사러 가면서 잠을 못 자서인지 정말 실수도 많이 하고 '아, 오늘 정말 꼬인다!', '내가 진짜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허튼짓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약간 후회도 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맞았다. 그럴 가치와 보람이 충분했다.


한정판에 설레는 마음, 한정판을 사기 위해서 왕복 3시간을 들여서 왔다 갔다 하는 정성과 열정,

무엇인가를 갖고자 하는 열망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


그것을 갖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한정판'의 미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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