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을 끊는 최고의 방법

생각만 바꿔도 살이 빠진다!

by 하원


음식을 남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음식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지,
배가 얼마나 불렀는지보다 '음식을 남기면 천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다 먹어야만 한다'라고 주입식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으면서 자라온 세대한테는 특히나 그렇다.

배가 부르면 남겨라.라는 말보다 그래도 먹어라. "음식을 남기면 예의가 아니다."

라는 말이 어느새 숨 쉬듯 내 사고를 지배하고 행동과 습관까지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나서 1년 4개월이 된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가족들은 살이 안 찌는데 같이 먹었는데도 억울하게 왜 나만 살이 찌는 것일까? 어떻게 저렇게 조금밖에 안 먹을 수가 있지?'

라는 억울함과 신기함, 놀라움,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최근에야 그 실타래가 점점 풀리고 있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라.'라고 가르치신 부모님도 배가 부르시면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 앞에 있는 음식들을 치우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고, 오빠도 어느 정도 배가 차면 바로 "배불러. 그만 먹을래"라고 말하고 실제로도 그만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미련스럽게 음식을 다 먹어치우려는 마인드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마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듯이 내 몸을 쓰레기통 취급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음식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이전에 내 몸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남김의 미학'을 습득해가고 있다.


음식을 남기는 것보다도 내 몸이 원하지 않는데 밀어 넣는 것이 더 큰 죄악임을, 접시에 담긴 음식이 겨우 한 젓가락 정도라서 먹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내 건강을 해치고 원치 않는 몸매를 유지하게 하는 첫 번째 악습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도, 우리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여백에서 느껴지는 숭고한 미의 가치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그것에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사기도 한다.


그런 원리를 이 남기지 못하고 내 몸에 채워 넣으려는 습관을 끊어 내는 데에 적용하고 있다.

음식이 앞에 놓이면,


'한 숟갈, 한 젓갈, 한 모금, 한 입만 더....!'

를 외치는 두뇌를 가다듬고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가고 있다.


'남기는 것이 얼마나 쿨하고, 절제하고, 몸의 더부룩함 없이 활기차고, 나의 미련스러움을 -1 하는 일인가! 그런 멋진 일을 포기하고 한 입 더 먹을 거야?'

라고.

먹고 나서의 좋지 않았던 경험들을 떠올리고 먹지 않았을 때의 즐거운 기억들을 거의 동시에 떠올려서 욕심부리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느낀 것인데,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인관관계에 대한 태도도 그렇게 변화해왔던 것 같다.


여백의 미, 알게 되다.


예민함이란 쓸모 있고 훌륭한 감각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아직 몰라서 상처 받고 아파하며, 내 예민함을 견디지 못하고 먹혀 버렸던,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매일 식단일기를 기록하며, 나를 되돌아보지 못했던 시절에.

불과 1~2년 전까지의 나는 진짜 나를 모른 체하고 미워하고 다른 페르소나를 내세우며 살았다.


학창 시절, 사람을 사귀는 게 쉽지 않았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깊이 있게 알아가고,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공상하길 좋아하는 지금의 나처럼, 그때 그 어린아이였던 나도 그랬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숙하고 '애어른'이란 말을 듣곤 했던 나로서는 어른들한테는 항상 칭찬받고 예쁜 아이로 분류됐지만,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리 인기 있지 못했다. 자주 겉돌았다. 크게 어긋나는 것은 없었지만 무리에서 자주 도태되곤 했다. 따돌림을 당한다거나, 나를 싫어하는 친구가 있다거나 한 적은 없지만, 나를 꼭 무리에 데려가려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지도 않았다.


그게 항상 어떤 건들면 툭 튀어나오게 되는 기폭제, 트라우마, 스트레스, 트리거가 되었었다. 그런 마음이 사람을 사귀면, 그 사람한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맞춰주고 매달리면서까지 그 사람한테 헌신하고, 떠나거나 떠나보내려고 하지 않는 집착 같은 마음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항상 지쳤다. 좋은 모습, 좋게 다듬은 나만 내보이려고 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끈질기게도 나를 따라붙어서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숨이 막혀 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 다 우면서 나답지 않음'의 굴레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자기소개처럼 나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면 눈 앞이 아득해지면서 어둠 속으로 뚝 떨어지는 것만 같이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매일 매 순간 생각하면서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넘쳐나서 생각 속에 갇혀서 타인의 눈치를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나는 대체 뭘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지? 내가 내보이고 있는 모습이 진정한 나인가? 내가 감추려 드는 내가 미워하는 모습이 진짜 나인가? 뭐가 나지? 타인이 말하는 모습이 나인가? 를 생각해왔지만,

점점 더 갈피를 잃고 나와 친구가 되어준 사람에게 의지하려 들고,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끊어내질 못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마신 독약이었다.


한쪽이 희생하고 한쪽이 더 노력하고 맞춰주는 갑을 관계, 끌려다니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함을 내 마음이 아스팔트 바닥에 갈려 짓이겨져서 곪아 터져 봉합하지 못하고 뜯어내야만 할 수준에 이르렀을 때,

정말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겠는, 내 곁에 남아있어 줄 사람이 누구인지 수없이 의심이 들고 어떤 사람을 끊어내고 어떤 사람을 곁에 둬야 내가 더 이상 건방지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힘들어하는 내 곁에서 위로를 건네고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한테까지도 정말 믿어도 될까? 싶었을 때,

내가 나를 살리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데 힘들다 느껴졌을 때,

그때,

그런 지경에 이르러서야 여백의 미를 인정하고 인간관계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하나둘씩 가차 없이 끊어냈다.


그렇게 연락처가 줄어들고,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줄어들고, 적당한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한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내가 나로 바로 설 수 있었다.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하고 미워했던 내 모습마저 사랑하는 마음이 점차적으로 생겨났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점차적으로 늘어났고, 그것을 기록했고, 나는 점점 행복하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갔다. 점점 더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원하던 모습대로 변해갔다. '변했다'기 보다는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내 모습을 꺼내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든 내가 됐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대인관계에서 '올바르고 성공한' 사람의 기준에 걸맞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같이 있음 즐겁고 좋은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소수의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 참 괜찮아. 깊이가 있고, 뚜렷한 사람이야. 명확하고 센스 있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친해지면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재밌어.라고 인식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덜어 내고 난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나는 제법 나 답고, 나를 잘 알고, 예민함을 잘 다룰 줄 알고, '내가 어떻게 보일까?'보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의 기분과 감정에 더 주의를 기울여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해야지.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김의 미학은 과한 욕심을 덜어내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울렁지는 파도를 잔잔하게 바꾸어 준다. 그리고 파도를 타고 일어서기에 꽤나 좋은 파도와 자주 맞닥뜨리게끔 해준다. 단 한 숟가락의 미학, 남김의 미학은 꽤나 가까운 곳에서 자주 맞이 하게 된다. 이것을 항상 기억했으면 한다.


화요일에 약속 있어서 샌드위치 가게에서 먹고 남은 샌드위치를 포장해와서 수요일 저녁에 먹은 것, 점심에 배불러서 먹고 남긴 비스코티 한 조각과 함께 먹었다.


먹고 남은 것을 테이크 아웃 해와서 나중에 먹어도 되니까, 살아가면서 남겨두는 부분이 있는, 여백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꼭 지금 다 먹어치워야만, 꼭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아야만, 꼭 지금 원하는 모든 것은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안다.
또 그렇게 다 이루어졌을 때,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체하지 않을 만큼, 더부룩하지 않을 만큼, 먹고 났을 때, 딱 기분 좋게 적당히 배부른 만큼, 먹을 만큼 먹고 테이크 아웃하는, 딱 멈추는 습관을 들여가고 있다.
편하게 소화시키는 삶을 살고 싶어서.


목요일에 테이크아웃해서 먹고 남은 케이크와 샌드위치를 금요일 아침과 점심에 나누어서 먹었다.


남김의 미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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