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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라파고스 Nov 21. 2024

#6 결국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는 거야

<군생활 에피소드> D-DAY

인생에 단 하루뿐인 오늘보다 더 기뻤던 날은 보름 전 말출 출발일이다. 15일이라는 짧지 않은 휴가 동안은 그냥 전역한 기분으로 지냈다. 자유에 심취해 군인이란 사실을 망각해서일까 군대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전역을 하루 앞둔 어제 수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부대로 돌아오면서는 생각처럼 엄청 기쁘진 않았다. 물론 귀찮아 그런 면도 있지만 이젠 수원을 왔다 갔다 하는 이 짓도 영원히 안녕이란 생각에 기분이 참 묘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말출 하루 전으로 돌아가 본다. 일과가 끝났단 사실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온몸으로 기쁨을 만끽하며 지난 군 생활을 회상했다. 힘든 시기를 잘 버텨냈다는 안도감과 여러 이들과의 작별에 아쉬움이 든 걸로 보아 어느새 나도 군대에 적응하고 또 정이 들지 않았나 싶다.


중대장님, 행보관님 두 분께는 미리 써둔 편지를 드렸다. 중대원으로서 잘 따라오지 못한 데 대한 죄송한 마음과 많은 배려를 해주신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을 편지에 솔직히 담았다. 그리고 지난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십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넣었다.


여태 스스로를 군인과 참 상극인 인간으로 받아들여왔건만 지나고 보니 고작 18개월이다. 15일의 자유로 다 회복되는 것들을 그동안엔 왜 그토록 힘들어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돌아가라 한다면 분명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결국 나 또한 여느 예비역 선배들처럼 기억이 미화된다.


위병소를 나서는 나를 보며 후임들은 자기한테도 언젠가 이날이 오겠지 하며 손꼽아 기다릴 게 분명하다. 수많은 선임들이 떠날 때마다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어쨌든 시간은 정직하며 보란 듯이 내게도 오늘이 찾아왔다.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 감격스럽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저 후련할 따름이다.


과연 군대가 그리워질까? 일단 당분간은 아니라 본다. 바쁘게 살다 보면 언젠가 아마도 무언가를 절실히 기다리며 설레하던 이곳에서의 내가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이젠 정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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