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를 따라 걸은 하루

Vienna, Austria

by 갈라파고스

어쩌다 보니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성지를 하나씩 찾아다니게 되었다. 사실 영화를 미리 챙겨 봤다고 특별한 감동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 속 장면이 실제 장소와 겹쳐질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묘하게 울렁거렸다. 그 여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졌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제시와 셀린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던 Alt & Neu Records였다.

LP를 전혀 모르는 나보다 음악에 진심인 사람들이 가득해 사진 한 장 찍기도 사실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저 그들의 시선을 따라 매대를 스치듯 둘러보았는데 그 순간조차 신기하게 즐거웠다. 에코백을 사서 조용히 떠나려던 찰나, 주인장이 친절하게 한 곡 들어보지 않겠냐 묻자 기꺼이 헤드셋을 귀에 올렸다.

거짓말처럼 흘러나온 Kath Bloom의 ‘Come Here’. 그 순간, 잘 찾아왔다는 흐뭇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오고 보니 에코백 안에는 LP 한 장이 들어있었다.

비가 그친 오후 4시, 다음 목적지는 제시와 셀린이 전화 놀이를 하던 Café Sperl이었다. 영화 속 빨간 소파가 보이는 대각선 자리에 앉아 프로세코 한 잔과 마릴레 케이크를 시켰다. 살구 케이크라 달콤할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맛처럼 마음도 한결 개운해졌다.

조금 일찍 프라터에 도착했을 땐 겨울이라 썰렁했지만 관람차만은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관람차를 잠시 바라보며 영화 속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알베르티나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모든 곳에서 느낀 묘한 여운은 단순히 영화 속 장소를 따라온 것이 아니라 비엔나라는 도시 자체가 영화처럼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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