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덕으로 읽는 권력의 식탁

Beijing, Mainland China

by 갈라파고스

베이징 덕은 단순한 미식이 아니라 외교사의 무대에도 등장한 상징적인 요리다. 1971년 미중 회담에서 저우언라이는 키신저에게 베이징 덕을 대접했다. 오리를 반으로 잘라도 괜찮겠다고 키신저가 농담하자 저우언라이는 베이징 덕은 통째로 구워야 제맛이라 답했다. 이는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분열 없이 공존해야 한다는 은유였다. 이 만찬은 훗날 닉슨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 수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요리 속 외교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괘노 방식의 베이징 덕 전문점, 利群烤鸭店
괘노 방식의 베이징 덕 전문점, 利群烤鸭店
민노 방식의 베이징 덕 전문점, 便宜坊
민노 방식의 베이징 덕 전문점, 便宜坊

베이징 덕의 조리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오리를 화덕 안에 매달아 직화로 굽는 괘노(挂炉)는 궁중 전통 방식으로 기름이 빠지며 껍질이 바삭하다. 반면 오리를 눕혀 굽는 민노(闽炉)는 남방식에서 유래했으며 연기가 적고 살이 촉촉하다. 오늘날 베이징과 중국에서 괘노의 대표주자는 진취덕(全聚德), 민노는 편의방(便宜坊)이다.

괘노 방식의 베이징 덕을 맛보러 찾은 리췬카오야(利群烤鸭店)는 진취덕 출신 주방장이 독립해 세운 업장이다. 30여 년 업력을 보유 중이며 중국 전역에 단 하나뿐이라 체인화된 진취덕 대신 택했다.

주방에서 오리를 통째로 들고나와 직접 카빙해 주는 장면은 익히 알려진 대로였다. 오리의 크기는 보통 수준이었고 껍질과 살코기를 거의 1:1 비율로 썰어냈다. 두 접시에 담겨 나온 고기는 설탕과 껍질 단독 제공은 없었는데 이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첫 점을 입에 넣자 기존 베이징 덕 상식이 무너졌다. 껍질은 바삭하다기보다 얇게 파삭 씹히며 곧 녹아내렸으며 살은 촉촉하면서 고소한 기름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느끼할 수 있기에 쌈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오빙(밀전병)에 파채와 베이징 덕 한 점을 소스에 콕 찍어 올려 싸 먹었고 단맛, 향긋함, 고소함이 삼박자를 이뤘다. 특히 이 집의 소스는 자두로 만들어낸다는데 새콤하면서 달짝지근해 오리의 기름기를 말끔히 씻어냈다.

카빙 후 남은 살코기로 만든 오리 튀김도 인상적이었다. 튀김옷 없이 뼈째 튀겨 거칠게 바삭 부서졌고 짭조름해 술안주에 제격이었다. 베이징 덕의 기름진 맛과 대비돼 오히려 계속 손이 갔다.

며칠 뒤 편의방에서 민노 방식의 베이징 덕을 맛봤다. 바삭한 껍질은 덜했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었고 살코기의 풍미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특히 살코기를 얇게 썰어내는 방식은 공통적이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접했던 베이징 덕과는 뚜렷이 다른 차이였다.

경산공원 내 만춘정에서 바라본 자금성의 전경

베이징 덕은 권력의 음식이다. 굽는 방식부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그 결과물이 궁중과 권력자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저우언라이가 키신저에게 건넨 한 마리 오리처럼 오늘날에도 베이징 덕을 맛본다는 것은 한때 세계사를 움직였던 상징을 입안에서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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