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닫혀 있던 기억 속의 문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녹슨 문이 천천히 밀려 열리듯, 그녀의 의식 너머에서 잊혀진 장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기엔 희미한 금속 냄새가 감돌았고, 정적을 가르듯 귓가에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울렸다.
감정 파동의 여진은 아직도 가슴 깊숙한 곳을 울리고 있었다.
무너진 감정 억제 장치에서 금빛 잔류 에너지가 희미하게 흩어지며 전자음처럼 떨리는 공기를 만들었다.
심장은 마치 조율되지 않은 악기처럼 불규칙하게 떨리고, 머릿속은 뿌연 안개 속에서 어지럽게 맴돌았다.
“여긴… 어디지…?” 엘라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계음도, 감시 카메라도, 드론의 날갯짓도 없는 낯선 공간. 그러나 익숙했다.
눈앞에 펼쳐진 건 과거의 기억을 담은 심층 기억 영역이었다.
뿌연 안개 속에서 하나둘, 장면이 떠올랐다.
낡은 거실, 오래된 목재 가구에 밴 눅눅한 먼지 냄새, 밟을 때 마다 삐걱이는 마루바닥,
커튼은 축축히 늘어져 있었고, 벽난로 앞의 카펫은 세월의 흔적처럼 퀴퀴한 냄새를 품고 있었다.
벽에 걸린 가족 사진, 식탁 위 따뜻했던 저녁의 흔적, 그리고...
“엘라, 왜 또 감정 통제를 못했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뇌리를 찢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 차갑고 무거운 정적. 벽지의 향. 깜빡이던 전등.
엘라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아무도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그 한마디가 허공에 울려 퍼졌고, 그 순간,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반짝이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것은 감정의 입자가 되어 빛으로 흩어졌고, 기억의 방을 천천히 물들였다.
--- 현실 .
엘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가슴 한가운데가 마치 찢긴 듯 아팠지만, 동시에 그 아픔이 생생한 온기로 느껴졌다.
손끝이 저릿하게 저며오고, 마치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기억의 여진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잔영처럼 퍼지고 있었다. .
“엘라, 괜찮아?”
하린이 다가와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눈동자 속에는 걱정과 연민, 그리고 익숙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억이… 돌아왔어. 부모님과의 마지막 순간, 감정을 버렸던 이유… 전부 다.... 기억났어.”
“고통스러웠지?”
“응, 상처투성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마음이 조금 편해.”
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식별기 장치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안의 숫자들은 엘라의 감정 곡선을 따라 진동했다.
“감정을 되찾는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그냥 웃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야. 후회하고, 고통스럽고,
그걸 잊지 않고 껴안고 가는 거야."
엘라의 말에 하린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아주 작은 곡선이 그려졌다.
“나도… 방금 무언가 떠올랐어.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 느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 남아 있었어.”
그 순간, 하린의 식별기에도 옅은 빛이 일었다.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부드러운 노란색.
공기 중에 따스한 떨림이 퍼졌고, 잔잔한 감정의 물결이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떨어진 물결처럼 공간을
흔들었다. 벽에 걸린 액자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벽난로 주변에서 먼지 냄새가 은은히 피어올랐다.
감정의 파장은 보이지 않는 빛줄기처럼 공간을 감쌌다.
“너도 감정을 회복하고 있어.”
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엔 처음으로 작지만 분명한 인정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정서 파동 동조 감지. 대상: H-0825.』
천장의 감지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감정 동조…?”
“그래, 감정은 연결돼. 기억도 그래. 누군가의 감정은 다른 누군가를 울리고, 그 울림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엘라의 말에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감정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전염되는 희망이야.”
짧은 침묵.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분명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소리 없이 번져가는 따뜻한 온기, 느린, 그러나 분명한 변화의 시작.
그들의 곁을 스치는 바람은, 이제 은은한 꽃향기를 품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 공기를 타고 번지는 듯, 그 온기는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전염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새로운 혁명의 불씨가 되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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