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문이 금속을 긁는 듯한 끼익— 하는 비명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안개가 들끓듯 요동쳤다.
바닥 위 전선이 파직이며 불꽃을 튀겼고, 공기 중엔 전자기장이 터지며 생기는 날카로운 떨림이 퍼졌다.
바람조차 숨죽인 공간.
폐쇄 구역 Z-0.
시스템 핵심부에서도 가장 깊숙한, 잊혀진 장소.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전설 속 실험체였다.
그리고 -
"실험체 12… 살아 있었어…?"
엘라의 목소리가 공허한 공간에 가볍게 흩어졌다.
떨림으로 가득 찬 음성은 곧바로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하린은 숨조차 멈춘 채 그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낡은 실험복 아래로 엿보이는 표식, 그리고 그가 내뿜는 기묘한 기운.
낯설지만...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하린 앞에 섰다.
발걸음마다 금속성 바닥이 둔탁하게 울렸고, 그의 등 뒤로는 여전히 전선이 파직하며 불규칙한 전류음을
흘렸다. 공기는 더 차갑게 식어갔고, 짙은 회색 눈동자엔 어렴풋이 감정의 잔향이 맴돌았다.
"하린.... 정말.... 너구나."
그 한마디에 하린의 심장이 비틀리듯 아팠다.
잊었다고 믿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 속엔 한때의 따뜻함과 동시에 깊은 서늘함이 뒤섞여 있었다.
"… 오빠?"
류와 엘라가 동시에 놀란 얼굴로 하린을 바라봤다.
"하린, 저 사람이… 네 오빠라고?"
하린은 믿기지 않는 듯 입술을 달달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충격과 혼란을 따라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럴 리 없어… 오빠는 오래전에… 감정 삭제 실험 중에…"
남자—실험체 12, 본명 하진—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목에는 감정 억제 장치의 깊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그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감정을 지우기 위해 가했던 폭력의 흔적이었다.
그날의 기억.
몸을 가르던 전기 자극의 날카로운 기계음, 피 대신 흘러나오던 쇠 냄새, 손끝이 마비되어 가던 감각.
그 모든 고통이 여전히 그의 피부 아래 잠들어 있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어. 다만, 시스템 안에 갇혀 있었을 뿐이야."
엘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 모든 진실을… 지금껏 감췄죠? 왜 우릴 그냥 두었나요?"
하진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 낮고, 슬펐다.
"시작은 우리가 감정을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어. 그게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 거라 믿었지.
하지만 착각이었어. 감정을 지운 자들만 남은 세상...., 생명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계에 불과했어."
류가 다그치듯 물었다.
"그럼 왜 그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시킨 거야? 당신 같은 설계자라면 막을 수 있었잖아."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썹 사이로 깊은 후회의 주름이 새겨졌다.
"난 저항했어. 하지만 내 목소리는 묵살당했고, 시스템은 나를 위험 요소로 간주했지.
그래서… 나를 시스템의 일부분으로, 감시 대상이자 핵심 제어 코드로 만들어버렸어."
하린은 숨을 삼켰다.
그녀의 시선이 하진에게로 향했고, 입술을 꼭 다물고는 낮게 물었다.
"그럼… 엄마와 아빠는…?"
하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짧은 침묵. 그 침묵이 모든 진실을 대신했다.
하린의 입술이 떨렸다.
"그들도… 감정을 잃은 채 시스템의 부속이 된 거야…“
그 순간, 하진이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었다.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린... 가까이 오지 마. “
하린이 놀란 눈으로 멈춰 섰다. ”왜...? “
”내 안의 억제 코드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야. 내 의지가 아니라... 남은 명령어가 널 해칠지도 몰라.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 변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흐릿해졌다. 무표정이 스치듯 지나갔다가, 다시 인간의 감정이 서린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진은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오빠라고 부를 수 있겠어. 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을 시스템에 넘긴 손이었어. “
하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녀는 한 발짝 다가섰다.
”오빠 잘못이 아니야. 그건 시스템이 만든 지옥이야. 오빠가 아니라 그들이.... “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낮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리츠가 감정을 지키는 빛이었다면.... 난 그 감정을 죽이는 칼날이었지. 하지만 그 칼날을 쥔 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그럼에도 내 손에 피가 묻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
주변 공기조차 무겁게 내려앉았다.
희미한 전선의 찌릿한 소음과 함께, 오래된 기계에서 풍겨 나오는 쇳내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류와 엘라는 아무 말 없이 하린 곁에 섰다.
그 조용한 연대감은 흔들리는 그녀의 중심을 간신히 지탱해 주었다.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 속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굳건한 결의가 불타올랐다.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든 이 시스템, 반드시 무너뜨릴 거야.
더는 누군가의 감정을 삭제당하게 둘 수 없어."
하진은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빛 속에도 오래 억눌러온 감정이 다시 피어나는 듯했다.
"그래. 이젠 우리가 끝을 만들어야 할 때야. 감정을 되찾기 위한, 진짜 전쟁을 시작해야 해. “
그 순간 --- 쩍---!
벽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금속 비명이 터졌다.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깊은 곳에서 저주처럼 울리는 진동이 퍼졌다.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 깜빡였고, 공기 중엔 숨 막히는 정전기가 번져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통제실 벽면의 균열은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균열 사이로 푸른빛의 데이터가 새어 나와 허공으로 흩어졌다.
경고음이 도시 전역에 울려 퍼졌다.
『비인가 감정 반응 확산. 시스템 균열 발생. 통제 불가.』
숨죽였던 저항의 불씨가, 드디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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