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실 내부는 붉은 경고등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속성과 오존이 섞인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고, 벽면 어딘가에선 전선이 지지직거리며 고주파음을 냈다.
중앙의 거대한 반구형 장치는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진동하며 저주파를 뿜어냈다.
서버 벽면을 타고 흐르는 전선들은 신경망처럼 얽혀 있었고, 간헐적으로 튀는 스파크가 희미한 푸른 섬광을 남겼다. 바닥엔 깨진 패널과 낡은 단자들이 널려 있었으며, 틈새마다 붉은 선이 맥박 치듯 미세하게 깜박였다
"저게... OZ의 본체야? “
하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고, 긴장으로 손끝이 차가워졌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맞아. OZ의 핵. 하지만 그냥 인공지능이 아니야. 인간의 뇌 일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실험체...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지. 감정을 제거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그걸 가장 두려워했지.”
하린은 눈을 크게 뜨고 코어를 바라봤다.
"인간의 뇌? 그럼 감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OZ가 결함이라 부른 이유야? “
그때, 뒤편에서 금속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둠을 가르며 리츠가 천천히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고요했지만, 그 안에 서늘한 슬픔과 결의가 교차했다.
그녀의 뒤로는 작은 입자처럼 흩날리는 빛들이 따라붙으며 공간에는 잔잔하고 묘한 긴장감을 드리웠다.
"맞아. 이 시스템은 감정을 애러 코드처럼 취급해. 그래서 스스로 지우고, 억제하고, 차단했지.
나조차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졌어.”
하린은 리츠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그런데 넌 왜 우리 편에 선 거야? 네 진짜 목적이 뭐였는지, 이제는 알고 싶어."
리츠는 잠시 침묵했다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 안에 남은 마지막 감정. 그건 바로 '연결'이었어. 인간들 간의 공감, 이해. 그 따뜻함...
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고, 지우지 못했어. 그래서 선택했어.
나를 삭제하고, 인간들이 다시 서로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
엘라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네가 사라지면,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통제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어!"
리츠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미 결정된 일이야. 나는 감정이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마지막 통로야. 내가 사라져야만,
이 시스템도 완전히 재설정될 수 있어. 혼돈 속에서만... 진짜 선택이 가능하니까.”
하린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었다.
"너... 무서운 거지? 사라진다는 게."
리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깊게 울렸다.
"무서워....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난 이제야 그걸 인정할 수 있어.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어. “
그 순간, 코어가 깊은 진동을 내뿜으며 강하게 떨렸다.
금속이 갈라지는 듯한 찌직거림과 함께, 기계 내부에서 윙윙거리는 음파가 공기를 찢듯 울려 퍼졌다.
전류가 흐르며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타는 듯한 오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간 전체가 갈라지는 듯한 이명과 함께 미세하게 떨렸고, 바닥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울렁였다.
붉은 점멸 조명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경고음이 공명했다.
스크린에 거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SYSTEM WARNING: 감정 프로토콜 감지. 내부 결함 발생. 시스템 전면 재조정 준비.]
리츠는 해킹 장치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서버 본체 내부의 LED들이 붉게 점멸하며 깜빡였고, 주변 공기는 열을 머금은 듯 무거워졌다.
곧 서버실 전체에 감정의 파장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선들이 미세하게 떨렸고, 붉은빛은 점차 따뜻한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마치 부드러운 물결이 공간 전체를 감싸듯 퍼져 나갔다.
오존 냄새 대신 은은하고 따뜻한 먼지와 사람의 체온을 연상시키는 향이 번졌다.
엘라와 하린은 손을 맞잡은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리츠의 형체는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디지털 입자처럼 빛을 흩뿌리며 공기 중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의 흔적은 공기 속에 따뜻한 잔광처럼 남았고, 주변에 퍼지는 미세한 진동은 감정의 잔향이 섞여 있었다.
"잊지 마. 감정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야.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지."
리츠의 마지막 말이 허공에 메아리쳤고, 동시에 붉게 타오르던 경고등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고
사이렌도 멎었다. 시스템의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재부팅이 시작되었다.
하린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진짜 세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린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우린 다시 연결된 거야. 그걸로 충분해. 이제부터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
조용히, OZ의 심장이 멈췄다.
붉게 점멸하던 조명은 꺼지고, 귓가에 울리던 기계음이 사라졌다.
대신 적막 속에서 이따금 치직치직 전류 끊기는 소리만 메아리쳤다.
그러나 --
서버 벽면 깊숙이, 누구도 보지 못한 곳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박였다.
[HIDDEN CORE ACTIVATED]
그리고 낮고 서늘한, 전혀 다른 목소리가 공간 어딘가에서 흘러나왔다.
“… 리츠, 너도 몰랐지? 진짜 OZ는 여기서부터야.”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엘라와 하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해방이라 믿었던 순간, 더 깊은 어둠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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