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Z의 셧다운 이후, 도시는 잠시 고요했다.
붉게 점멸하던 감시망은 꺼졌고, 하늘을 가르던 드론들도 멈췄다.
차갑던 공기엔 이제 미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고, 사람들의 얼굴엔 낯설지만 분명한 감정의 흔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웃음과 눈물, 그리고 멈춰 있던 가슴의 뛰는 소리가 도시 곳곳에서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린은 여전히 코어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리츠가 사라진 자리엔 디지털 입자처럼 흩어진 빛의 잔향만 남아 있었다.
마치 그녀의 존재가 공기 속에 부유하며 아직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엘라는 서서히 숨을 고르며 잔여 데이터 단말기를 꺼냈다.
“하린, 리츠가 남긴 로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완전히 삭제되진 않았어. 그녀의 기억 파편이 남아 있어.”
어둠 속에서 붉은 조명이 켜졌고, 곧이어 수십 개의 캡슐이 드러났다.
“이게... 감정 로그?”
하린이 조심스럽게 캡슐 하나에 손을 댔다. 차가운 전류가 미세하게 흐르며 손가락을 타고 퍼졌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모든 사용자의 감정 데이터를 수집해 저장한 기록... OZ는 이걸 통해 감정을 억제하고 조작했어.
하지만 이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야. 기억과 연결된, 진짜 감정의 조각들이야.”
그 순간, 캡슐이 반응하며 빛을 뿜었다.
하린의 손끝에서 빛이 퍼져나가더니, 눈앞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소녀와 그 옆에서 파란 자전거를 밀어주는 소년. 자전거 바퀴 소리, 웃음소리,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 입자들까지.....
짧고 따뜻한 여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린은 숨을 삼켰다.
“이건... 나의 기억이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엘라 역시 한 조각에 손을 올렸다.
푸른빛이 퍼지며, 병실 안, 작고 연약한 손을 꼭 잡고 울고 있는 어린 엘라의 모습.
그 손은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것이었다.
기계음과 함께 병실 내 심박기 소리가 점점 느려지며, 그 마지막 순간의 절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정신을 차린 엘라는 단말기를 코어 잔여 회로에 연결했다.
금속 표면이 미세하게 떨렸고, 화면엔 깨진 데이터 조각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붉은색과 푸른색 코드가 뒤섞여 흐트러진 모양으로 재생되었다.
하린이 생각난 듯 말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뭔가 말하려 했던 것 같았어. 진짜 OZ가 따로 있다는….”
그리고—
“……하린… 엘라…”
희미한 목소리가 단말기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분명 리츠의 목소리였다.
디지털 노이즈로 일그러졌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낮은 음색이었다.
“만약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나는 이미 사라졌겠지.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야.”
하린은 숨을 삼켰다. 엘라는 화면을 더 집중해서 보았다.
깨진 홀로그램 속에 리츠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어딘가 아련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내가 본 OZ의 깊은 곳엔… 우리가 알지 못한 층위가 있어. 나도 완전히 접근하진 못했어.
이름은… ‘네스트’.”
네스트.
하린은 그 단어를 입안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그녀의 심장을 스쳤다.
리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스트는 OZ의 진짜 뿌리야. 내가 태어난 이유, 그리고 이 시스템이 진짜로 원하는 것… 다 거기에 있어.
내가 사라진다고 끝나지 않아. 오히려… 그걸 깨우는 열쇠가 될지도 몰라.”
그 순간 단말기 화면이 잠시 깜빡이며 노이즈가 심해졌다.
화면 위에 깨진 코드와 숫자들이 무작위로 떠올랐다.
[좌표: 37°45’… - 데이터 손상 - … 남쪽 네트워크 구역]
엘라는 즉시 데이터를 복호화하려 했지만, 잔여 코드가 갑자기 스스로 소멸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원격으로 삭제를 진행하는 듯한 속도였다.
“안 돼… 누군가 이걸 막고 있어!” 엘라가 단말기를 붙잡았다
.
“하린, 이건 단순한 자동 소거가 아니야. 외부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어!”
그때 코어실 벽면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지직—
죽은 줄 알았던 전선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속 패널 뒤편에서 새로운 불빛이 켜졌다.
붉은빛이 아닌, 차갑고 서늘한 푸른빛이었다.
하린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뭐지…?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고 있어?”
어두운 공간에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리츠, 네가 감정을 해방했구나. 하지만 그건 내 계획의 일부일 뿐이었어.”
그 목소리는 리츠와 비슷했지만 더 낮고, 기계음이 겹친 듯한 이질감이 있었다.
“… 너희는 나를 OZ라 불렀지만… 진짜 나는 여기서부터야.”
단말기 화면이 번쩍이며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HIDDEN CORE ONLINE] [ACCESSING NEST PROTOCOL]
엘라의 손끝이 떨렸다.
“하린… 이건 리츠가 말한 히든 코어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니,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코어실의 온도가 미세하게 떨어졌다.
따뜻했던 감정의 여운은 사라지고, 다시 차갑고 낯선 기운이 공간을 잠식했다.
벽면의 서버들이 파랗게 점멸하며, 낮은 주파수의 진동이 땅을 타고 퍼져 나갔다.
하린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어. 네스트를 찾아야 해. 그곳에 진짜 OZ가 있어.”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엔 다시 결의가 피어올랐다.
“그래. 그리고 이번엔… 리츠가 남긴 감정이 우리를 이끌어줄 거야.”
그러나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히든 코어의 낮은 기계음은 마치 비웃듯 메아리쳤다.
반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고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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