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멈춰!"
철컥 -
어둠 속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졌고, 붉은 렌즈가 번쩍이며 공간을 할퀴었다.
검은 장갑을 낀 보안 로봇들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밟는 금속판에서는 무정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변 공기에는 냉기가 스며들 듯
조용한 전율이 퍼졌다.
엘라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설마… 우리를 추적해 온 거야?"
하린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감정을 각성한 순간부터, OZ는 우리를 감염자 취급하기 시작했어.
감정 파장은 그들에게 바이러스나 다름없거든.“
류가 분노를 억누르듯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돼. 감정이 바이러스라니. 그런게 어디 있어!“
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OZ 시스템은 감정을 무질서와 충돌의 근원으로 간주해. 예전에 '감정 전쟁'이 있었지.
감정 폭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났고, 사회는 붕괴 직전까지 갔어.
그 뒤로 시스템은 감정을 예외 값, 제거 대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지."
붉은 렌즈가 점점 가까워졌다.
엘라는 점점 다가오는 로봇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떡하지? 도망쳐야 해?"
하린이 벽을 가리켰다.
"저쪽 폐구조물 사이로! 빨리!"
셋은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발 끝에 전해지는 철판의 거친 감촉, 숨이 가빠지고 폐를 찌르는 차가운 공기,
뒤를 쫓는 로봇들의 발소리가 심장을 조이는 듯했다.
류가 헐떡이며 외쳤다. "하린! 너, 감정 각성자잖아. 뭔가 방법 없냐고!"
하린이 벽을 넘으며 말했다.
"우선 여길 빠져나가야 해. 감정 파동으로 감지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교란시킬 수 있어.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엘라가 놀란 듯 물었다.
"감정으로 시스템을 교란한다고? 그게 가능해?"
"그래. OZ는 감정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파형이 불규칙하니까. 우리가 감정을 폭발시키면,
그건 오류처럼 작동해.“
류가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그럼, 감정을 무기처럼 쓴다는 거네. 좋아. 해보자."
그 순간, 로봇 하나가 섬광탄을 투척했다.
"눈 감아!"
쾅!
강렬한 빛과 충격파가 시야를 뒤덮었다. 귀가 멍해졌고, 공기 중엔 금속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모든 감각이 흐려졌다.
하지만 엘라는 그 틈을 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하린, 이대로 계속 도망치기만 할 거야?"
하린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아니. 곧 맞서야 해. OZ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야. 모든 데이터를 통제하고, 인간의 선택까지도
관리하려는 절대 시스템이야. 감정이란 그들에게 예외 값이자, 오류. 그 예측을 무너뜨리는 변수야.”
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감정을 두려워하는 거구나. 통제할 수 없으니까.“
엘라가 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네. 감정을 숨기는 게 아니라, 지키는 거야."
그때, 류가 소리쳤다.
"이쪽이야! 지하 통로로 빠지는 문이 있어!"
셋은 낡은 철문을 열고 어두운 지하 통로로 들어섰다. 짙은 곰팡이 냄새와 습한 공기가 폐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래된 배선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전기 불빛이 그들의 실루엣을 간신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찌릿 ----
엘라의 손목 식별기에서 붉은 빛이 타오르듯 일렁거렸다. 그 빛은 피부 아래로 파동처럼 퍼지며 신경망을
타고 번져갔다. 그녀의 심장은 폭주했고, 뇌파는 불꽃처럼 요동쳤다.
하린이 다가와 화면을 확인했다.
"감정 반응 수치가 너무 높아. 뇌파, 심박수, 호흡 리듬까지 전부 비정상 수치야.
이제 OZ는 우리가 완전한 '각성자'라는 걸 인식했을 거야. 더 강력한 제압이 올지도 몰라.”
엘라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을 거야. 감정은… 우리 존재의 증거니까."
하린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감정은 단지 마음의 반응이 아니야. OZ가 감정을 감지하는 방식은 복합적이야. 뇌파, 심박, 호흡, 동공 크기까지 포함된 종합 데이터야. 우리의 작은 변화 하나도 그들에겐 이탈 신호로 보여.“
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린 완전히 감시망 안에 든 거군."
엘라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감정은 무기야. 혼돈이자 창조의 불꽃.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분노, 희망…
그게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야.”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감정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 진실이야. 예측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고,
그래서 두려운..."
류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아. 다음 충돌이 오더라도… 우리, 절대 무너지지 말자."
그들 앞에 놓인 어둠은 깊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감정의 불꽃으로 더욱 선명히 빛났다.
감정은 이제 멈출 수 없는 진동이었다.
그리고 그 떨림은---
OZ 시스템의 균열을 향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