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지하 통로의 끝, 낡은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며, 녹슨 금속과 곰팡이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벽면의 노출된 전선 사이로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튀었고,
천장 아래에서는 희미한 백색 홀로그램이 일렁이며 유령처럼 흔들렸다
철썩이는 물방울 소리, 간헐적인 전류음, 멀리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기계음이 어두운 공간을 감쌌다.
마치 이곳엔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라며, 혹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려온 듯한 긴장된 정적이 맴돌았다.
"어서 들어와. 시간이 없어."
낯선 목소리.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울림.
엘라, 하린, 류는 동시에 멈춰 섰다.
그들 앞에 서 있는 인물은 검은 코트를 걸친 채, 얼굴의 절반을 매끄러운 금속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한쪽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고 모든 것을 관통하는 듯한 광채를 뿜고 있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빛. 오직 절제된 냉정과 치밀한 계산만이 깃들어 있었다.
하린이 낮게 말했다.
"누구야? OZ 쪽… 맞지?"
"맞아. OZ 시스템 내부 요원. 코드네임, 제로."
류가 앞으로 나서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놈이 왜 우릴 도와주는 척하는 건데? 함정이라도 파놓은 거 아냐?"
제로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엔 온기보다도 경고에 가까운 기운이 스며 있었다.
"예전엔 나도 너희 같은 '감정 보유자'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따랐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더 이상 시스템의 개가 아니거든."
엘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왜?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거야?"
제로는 천천히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순간, 눈빛에 섬광 같은 파장이 일었다.
"너무 깊이 들여다봤거든. 감정이란 것이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는지.
OZ는 과거 대붕괴 이후 감정을 통제하려 했고, 마침내 제거하기에 이르렀지.
나는 그 과정을 지켜봤고, 그 속에서 진실을 목격했어,“
류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말은 얼마든지 그럴싸하게 꾸밀 수 있지. 우리를 낚으려는 술수일지도.“
그 순간, 제로는 조용히 이마에 손을 올려 감응식 ID 칩을 떼어냈다.
푸슉—
강한 전류음과 함께 주변 공기가 흔들렸다. 붉은 경고 메시지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감시 대상, 연결 해제됨. 오류 코드 Z-01.』
하린이 충격과 놀라움으로 숨을 꿀컥 삼켰다.
"진짜… 끊어버린 거야? 시스템과 완전히 단절되다니… 이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제로는 짧게 웃었다.
"그래. 죽은 거나 다름없지. OZ의 눈으로는 말이야. 하지만 난 지금 살아 있어.
그리고, 이제는 시스템을 무너뜨릴 열쇠를 쥐고 있지.”
그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엔 무언가 날카로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감정 각성자 중에서도 일정 주파수를 넘는 감정 파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야. 그건, 무기다.”
엘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 열쇠가… 감정이야?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야?"
제로는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말했다.
"너희 모두. 각기 다른 파형, 다른 감정. 하지만 함께일 때, 하나의 거대한 진동이 되어 체계를 흔들 수 있지."
엘라와 하린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류는 여전히 의심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처음부터 우릴 감시한 거 아냐?"
제로는 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류, 넌 알잖아. 감정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야, OZ는 그것을 가장 두려운 바이러스로 간주했지.
그리고 지금, 너희는 전면 제거 대상이 되었어. 단순한 추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쟁이 시작된 거다.“
그 말에 류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오래전 기억의 파편이 의식 속으로 튀어 오른 듯, 무언가가 그의 눈동자에서 깨졌다.
하린이 조용히 말했다.
"좋아. 지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가 선택할 시간은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게.
거짓이라면.... 그땐 끝장이야."
제로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그 각오로 여기에 왔으니까."
그 순간, 철문 너머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비인가 감정 반응 탐지됨. 위치 추적 개시.』
엘라가 식별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작됐어. OZ가 우릴 포착했어."
하린은 자신의 이마에서 식별기를 꺼내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후퇴는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제로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단검처럼 날카로웠다.
"감정은, 그 자체로 혁명이야. 억눌린 감정이 폭발할 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체계가 무너지는 법이지.
불씨는 작지만, 폭발은 거대해."
엘라는 마지막으로 류를 돌아보며 속삭였다.
"믿어도 될까?"
류는 짧게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믿어보자. 단, 한 발짝이라도 틀리면—그땐 바로 끝이야."
어둠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그들.
그들의 발걸음은 OZ 시스템의 심장을 향한 저항의 첫 걸음이자, 억눌린 감정이라는 이름의 전쟁이 시작된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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