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제공감, Trip to Spain.
내가 50이 된 탓일까? 청소년기에 영미권의 대중음악에 심취해서 살았던 탓일까? 영국 아저씨 둘이 스페인을 여행하는 이야기에 이리도 흠뻑 스며들 줄은 몰랐다.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같은 팝스타와 제임스 본드, 마론 브란도 등 너무나 익숙한 이름과 그들의 성대모사는 우리의 7080 혹은 그 시절의 대학가요제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늦둥이를 키우는 롭과 장성한 아들로부터 바람을 맞는 스티브는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과 그대로 겹쳐진다. 어디서 어떻게 살던 50대가 되면 많은 것들이 포개지고 뒤엉키게 되는 모양이다.
배우이면서 글을 쓰기도 하는 롭과 스티브는 모두 영화에서도 실명 그대로 등장한다.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인 데다, 도대체 각본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두 사람의 연기는 리얼하다. 배경으로 깔리는 그림 같은 스페인의 풍광과 군침도는 요리들은 그들의 연기를 한껏 멋지고 고급스럽게 장식한다. 고풍스러운 옛 도시에서 와인과 새우요리를 즐기면서, 무어인과 가톨릭 간의 갈등의 역사에 제임스 무어, 데미 무어 등을 밀어 넣어 버리는 걸 보면 아제 개그는 글로벌 웃음 코드임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년)에 이은 Trip to...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이다. 어설픈 영화광인지라 앞의 두 영화는 보지 못했다. 세 영화 모두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과 두 배우가 오롯이 이끌어 간다. 이들의 40대 시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아마도 '나도 그땐 그랬지...'하며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
다양성 영화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화 취향, 아니 우리에게 제시되는 영화의 선택지가 터무니없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수 계층의 이야기'를 '다양성'의 한 축으로 설정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 역시 다양성 영화라는 이상한 장르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50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50대의 이야기를 50대의 시각으로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50대 만을 위한 영화라고 하기엔 영화에 등장하는 스페인의 역사와 풍광, 멋진 요리들이 너무나 아깝다. 나이가 어떻든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옆 자리 아제들의 수다를 살짝 엿듣는 재미가 쏠쏠할 테니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두 아제의 먹방 여행에 함께 하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