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아미미술관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그려봤음직한 로봇 두 친구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세히 보면 자동차 머플러, 보일러, 가스통, 예초기 엔진 등등 고물로 만든 로봇이다. 어찌 보면 로봇 찌빠를 닮은 듯도 하다. 아무튼 반갑다 깡통로봇!
어른이 된 후 초등학교 교실을 들어가 본 적이 있는지? 내가 앉아 있던 의자와 책상들이 이렇게 작았던가 싶고, 무릎과 허벅지 아래로 늘어서 있는 의자와 책상들은 나를 소인국에 와 있는 걸리버로 만든다. 그러다 창으로 스며 들어와 책상 위에 고여 있는 햇살 한 줌을 발견하고는, 나른하게 햇살을 즐기며 딴생각을 이어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나무 책상이 주는 기억은 세대를 구분하는 분명한 잣대가 된다. 오래되어 헐거워진 나무의 틈이 만들어 내는 삐걱거림과 부드러운 흔들림, 수십 년 동안 나이테처럼 쌓아 온 칼질의 흔적들, 겹겹이 칠해진 틈으로 비집고 나오는 원목의 무늬와 나무 냄새, 책상 귀퉁이를 살짝 깎아내어 이를 후빌 때 느껴지는 생나무의 맛... 회색의 페인트가 짙게 칠해진 금속제 다리에 합판으로 얹은 책상을 사용했던 세대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나무 책걸상만의 오감이 있다. 아미미술관은 그런 곳이다. 미술관이지만 초등학교 교실의 향기와 햇살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 그 공간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추억으로,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아련한 옛 것의 생소함으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건물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덩굴들은 어느 틈으로 들어왔는지 교실 구석과 창틀에도 가득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교실 가득 가을이 가득하다. 저물어 가는 오후 햇살은 그 가을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색을 더한다. 안팎으로 이어져 있는 덩굴들은 어쩌면 그 교실에 앉아 있던 꼬맹이들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마음은 저 밖을 내달리고 있었을 꼬맹이들... 나 역시 그런 꼬맹이었는데...
늦은 가을 여행길에 만난 아미미술관, 신나는 소풍길에 급하게 쑤셔 넣은 김밥에 목이 메일 때 마시던 사이다처럼이나 청량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