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알못의 고군분투기
대학 1학년 여름, 친구와 무전여행을 떠났다. 목표는 설악산 대청봉. 보이 스카우트 시절 쓰던 텐트를 배낭 위에 얹고 길을 나섰다. 대중교통으로 덕소까지 나온 후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에 대한 인심이 후했던 시기였던지라 차를 얻어 타는 것도 수월했고 점심이나 음료수를 얻어먹기도 했다. 화양강에서 하루 야영한 후 도착한 곳이 오색. 얻어 탔던 차에서 산 좋아하시는 아저씨에게 얻어 들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대청봉은 오색에서 올라가는 게 제일 빨라. 두어 시간이면 올라갈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산사람들의 과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순진하게 저 말을 믿은 우리는 오색약수터에서 내려 대청봉을 향해 올라갔다. 설악산이 무슨 북한산 수준 아니냐며 서로 우스개를 주고받으며 시작한 산행길, 두 시간을 훨씬 넘겨 산을 올랐지만 끝도 없이 어두컴컴한 산길. 심장은 뒤통수로 옮겨와서는 쿵쾅거리고, 종아리 근육은 녹아내리는 듯하다.
"대청봉까지는 멀었나요?" 잠시 쉬는 틈에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우리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던 아저씨는 "자네들 산은 좀 타 봤나?" 되묻는다. "설악산은 처음입니다." "다른 산은?" "북한산 몇 번 정도..." "그럼 더 이상 안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구먼. 내려올 길도 생각해야 할 텐데..." 아저씨의 음성엔 꾸지람이 스며 있다.
설악에 대한 산행은 여기서 끝이었다. 나머지는 케이블카로 권금성이나 금강굴까지 나들이. 이런 나에게 설악 단풍 구경을 권하는 친구가 있을 줄이야. 등산해 본 적 없다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실랑이 끝에 희운각 대피소는 수렴동 대피소로 타협을 봤다. 어디가 어딘지 나는 도통 모르지만... 모든 걸 다 준비할 테니 몸과 차만 가지고 오라는 솔깃한 제안에 결국 설악으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백담사 올라가는 셔틀버스는 만원이다. 늦은 설악의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이다. 백담사 계곡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돌탑들은 무슨 소원들일까? 저 소원들은 다들 이루어졌을까? 이제 본격적인 가을로 발을 들인다.
백담사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는 평이한 등산길이 이어진다. 대피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봉정암으로 향했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친구와의 산행은 즐겁다. 산길이 서툰 친구를 위해 여분의 스틱을 준비해 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챙겨주는 친구의 마음이 오후 햇살에 빛나는 단풍처럼 화사하게 다가온다.
대학 동창이지만 학교 다닐 땐 그리 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170명이나 되는 동기생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운 법. 졸업하고 IT 업계에서 지나치다 만나게 되면서 서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 IT 업계, 그것도 통신분야의 벤처에서 경제학과 동기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행 이야기, 아내와 투닥거린 이야기, 말 안 듣는 애들 이야기로 등산길이 심심치 않다.
마음만으로는 한달음에 대청봉까지 뛰어오를 듯했지만 30년 만에 처음 오르는 설악이 그리 호락호락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봉정암까지 올라가 보려 했지만 늦은 걸음 탓에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힘들 것 같아 2/3 정도 되는 지점에서 다시 수렴동 대피소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두어 시간의 산행에서도 설악의 가을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다음 날, 느지막이 아침을 챙겨 먹고 오세암으로 향했다. 대피소에서 저녁을 같이 보낸 노부부께서 오세암 가는 길에 있는 만경대를 추천해 주신 탓이다. 내설악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는 어르신의 추천이 친구 녀석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은 모양이다.
아직 등산객이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지 산길은 고즈넉하니 물소리만 들려온다. 넓지 않은 계곡엔 나무가 쓰러져 있고, 쓰러진 나무 등걸에 잔가지들이 엉켜 자그마한 연못을 이룬다. 연못 가장자리로 떠 있는 낙엽들과 투명하게 고인 계곡물은 시리도록 눈부시다.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친구의 눈치를 보아가며 셔터를 누른다. 좁은 계곡이지만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 아름답다.
어느 여름이었을까?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키던 고목들이 쓰러진 때가... 어느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어느 물살이었을까? 이리도 매섭게 계곡을 할퀴고 간 녀석이... 하기사 물살이건 바람이건 그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계곡의 일부인 것을, 따지면 무엇하겠나. 쓰러진 고목은 그대로 또 몇십 년, 몇 백 년 자리를 지키겠지. 또 다른 바람이나 또 다른 물살이 옮겨 놓기 전까진...
고개 하나만 넘으면 오세암일 것 같은데 발목을 구부릴 때마다 왼쪽 복숭아뼈 근처가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온다. 초등학생 시절 심하게 삐어 침 맞고 피까지 뽑아냈던 부위다. 잠시 쉬며 무리해서라도 가던 길을 마저 갈지를 고민하던 차에 등산화 밑창이 터져 버렸다. 시장에서 산 저렴한 등산화가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접착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벌어진 밑창을 들여다보니 낙엽과 돌조각들이 비집고 들어와 틈을 벌이고 있다. 결국 친구는 오세암을 다녀오기로 하고 나는 아쉽지만 조심스레 하산하는 쪽으로 길을 나눴다.
하산길에 느긋하게 계곡을 감상하며 셔터를 누른다. 급하게 올라갈 땐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세세하게 다가온다. 마침 적당히 떠오른 해가 경사면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가을을 밝힌다. 오세암이 아쉽긴 했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이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계곡에서 이런 햇살을 만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산속에서는 쉽게 인사가 트이고, 입이 트인다. 인적 없는 산길을 혼자 내려오는 어설픈 차림새의 등산객을 보면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부지런하십니다. 어디서 내려오세요?" 아마도 내가 대청이나 소청 정도 대피소에서 자고 내려오는 줄로 아셨을 거다. 음성과 표정에서 부러움과 호기심이 반반씩 읽힌다.
"오세암 올라가던 길인데요, 등산화가 탈이 나서 하산하는 길입니다."
하산 길에 마주친 서너 명의 등산객들은 내 대답에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하신다. 자연 속에서 미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공감대, 그분들의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더욱 오세암의 풍광이 궁금해진다. 내년 산철쭉이 필 때 즈음이면 다시 와 봐야겠다.
스쳐간 분들은 오세암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내가 안타까워 보였겠지만 내 목표는 단지 설악이었다. 내 친구가 그리도 예찬해 마지않는 설악이라는 곳이 어떤 곳일지, 그곳의 가을은 어떤 색일지, 대피소라는 곳을 왜 예약을 해야 하는지 등등... 터진 등산화를 신고 온 어처구니없는 친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준 친구 덕분에 조금을 설악을 알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설악의 가을도 담았다. 좀 더 깊은 설악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돌아오자마자 등산화를 개비했다. 설악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놈으로 추천받아서. 내년 철쭉이 피기 전까지 장만해야 할 것이 많다. 차근차근, 천천히... 설악은 거기 그대로 있다. 나만 달라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