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끈만 바꾸면 평생 친구
Domke F-2, 내가 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이다. 2004년쯤 거의 신품을 중고로 구입한 것이니 15년이 넘었다. 원래는 짙은 검정인데 햇볕에 바래 현재 스코어 밝은 회색(faded gray). 거의 내 머리색과 비슷하게 변해왔다.
커 보이지는 않지만, 요기조기 쑤셔 넣으면 가족여행 떠난 엄마 가방처럼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다. 별다른 잠금장치도 없이 평소에는 찍찍이로 여닫으니 급하게 물건 꺼내기도 편하다. 요즘은 어디에 넣어두었는지 한 번에 꺼내질 못해 문제지만... 게다가 어깨에 올려놓은 세 살짜리 딸아이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은 오로지 돔케만의 전매특허. 수도 없이 카메라 가방을 써 봤지만 15년 동안 이 놈만 한 가방을 만나지 못했다.
구석에 잘 찾아보면 닳아서 구멍 난 곳이 몇 곳 보이기는 하지만, 가방 자체는 빈티지한 멋을 폴폴 풍긴다. 특히 사진 좀 한다는 분들에게는 내 사진 캐리어를 웅변하는 간지뿜뿜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 가방은 몇 년이나 쓰신 겁니까?"
"10년은 훨씬 넘었을 겁니다."
15년을 쓰다 보니 어깨끈이 문제. 전체적으로 가장자리의 올이 풀려 나가면서 너덜너덜 빈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또한 사진 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멋이겠지만, 지하철에서 느껴지는 사진 안 하는 분들의 안쓰러운 시선은 끈적거리는 손잡이만큼이나 신경이 쓰인다.
결국 여기저기 뒤지다 아마존에서 새 가방끈을 주문했다. 통으로 달려 있어 지금 끈을 잘라내고 새 끈을 달고, 끄트머리는 바느질을 해야 하는 수고가 기다리고 있지만, 어깨끈만 바꾸면 아마도 평생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방끈 하나 지른 거 가지고 자랑질도 유난이다 싶다. 하지만, 15년 동안 든든하게 내 옆을 지켜준 물건이 몇 개나 되나 세어보면 이 놈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앞으로 열흘 남짓만 기다리면 빈티는 깔끔히 씻어낸, 로맨스그레이의 빈티지 돔케로 변신할 녀석을 생각하니 자랑질하고 싶어서 주절주절 손가락을 놀려 본다. 끈 바꿔 주고 다시 빨빨거리며 사진 찍으러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