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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재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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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Dec 16. 2020

6월 14일

치명적인 바이러스, 치료법을 찾아 미래로 떠난 3살 아이의 여정

장난감 가게


‘레고가 끌리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듀플로가 낫겠지? 세 살에 레고는 아무래도 아직 무리일 거야. 전기 자동차를 사줄까? 요즘은 장난감도 완전 자율 운전 기능이 있다던데. 부모 스마트폰으로 운전도 되고… ’ 


아들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A는 자신의 선물을 고르는 것처럼 들떠 있다. 어느새 옆에 와서 조용히 윙윙거리는 도우미 로봇에게 물어본다. 


“어이, 세 살짜리 남자아이 생일선물로는 뭐가 좋을까?”


“고객님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공개된 SNS 내용을 잠깐 검색해도 되겠습니까?”


“어, 그러려무나.”


대꾸하며 전화기를 꺼내 로봇에게 자신의 공개정보 검색용 QR 코드를 보여준다. 


“저희 백화점에서의 구매 이력과 공개되어 있는 고객님과 사모님의 취향을 분석한 결과 T-45 선반에 놓여 있는 스웨덴 원목  모형 기차 세트를 추천합니다. 구입하신 고객 중 98%가 만족하신 제품입니다. 유아에게 전혀 무해한 천연 자작나무를 친환경 공법으로 가공한 훌륭한 제품입니다. 자작나무의 살균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어린이에게 아주 좋습니다.”


“그래? 나쁘지 않군. 다른 사람들 평가는 어때?”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평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섬세하게 가공되어 장식용으로도 아주 좋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구매고객의 평균 평점은 5점 만점에 4.9점입니다.”


“0.1점은 왜 깎인 거지?”


“가격이 부담스러워 평점을 낮게 준 고객들이 몇 분 계십니다. 하지만 고객님의 경우는 월평균 소득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라, 이 놈이 내 소득까지 뒤졌단 말이지. 하긴 요즘 세상에 그 정도 정보야…’


“알았어. 하나 포장해줄래? 선물용으로 말이지.”


“감사합니다. 결제용 회원 코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오케이. 여기~~”


“제품은 정성껏 포장하여 지하 3층에 주차되어 있는 고객님 자동차의 앞 트렁크에 넣어 두겠습니다. P374503 차량 맞으시죠?”


“그래. 고마워.”


‘아내는 무슨 선물을 골랐을까? 아마 예쁜 옷일 거야.’ 


혼자 추측을 해 보며 A는 장난감 매장을 나선다. 내일은 아들의 생일을 위해 휴가를 내 두었으니 오늘 저녁은 홀가분하게 보낼 수 있겠다. 


생일날 새벽


“여보, 아이가 아무래도 이상해.”


걱정이 가득한 아내의 목소리에 A는 화들짝 잠에서 깬다. 잠옷 차림의 아내 B는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이다. 


“아이가 어제부터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을 했었는데, 새벽에 칭얼거리는 것 같아 봤더니 온 몸이 불덩이야. 진단 벨트 찾아서 채우는 동안 Y 선생님께 진단 콜을 걸어줘.”


잠은 덜 깼지만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알아차린 A는 전화기의 응급버튼을 누른다. 


“지금 시간은 2057년 6월 14일 오전 5시 27분입니다. 가족 중 어느 분이 응급상황이신가요?”


“아들, 급해.”


“아드님의 증상을 말씀해 주시면 응급대처 요령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증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시간 없어. 주치의 연결해줘. 지금 바로.”


“아드님의 주치의이신 Y박사에게 응급진단 콜을 요청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호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기 화면에 Y박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잠에서 막 깬 얼굴이다. 


“Y 박사님,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아 급하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A님이 가입하신 보험이 있으니 응당 제가 살펴보아야지요. 진단 벨트는 연결이 되었지요? 아… 지금 데이터가 오고 있군요. 오늘 새벽 4시부터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군요.”


“어제도 어린이집에서 잘 놀았다고 하는데, 자기 전부터 기운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원래 잠투정이 없는 아이였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잠투정도 제법 많았고요.”


B는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자질구레한 것들을 Y박사에게 풀어낸다. 


“이런 증상은 보기 드문 패턴이군요. 병원의 AI도 파악을 하지 못하는 건 처음 봅니다. 일단 해열제 한 알 아이에게 먹이시고 바로 병원으로 오십시오. 저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공포와 절망


A와 B는 서둘러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Y박사가 병원 AI를 통해 원격으로 이들의 차량에 응급 부호를 부여해 주어 신호 한 번 걸리지 않고 병원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달려오는 Y박사와 마주친다. 


“일단 검사를 몇 가지 해 봅시다. 혹시 모르니 부모님께서도 기본적인 몇 가지 검사는 받아 두세요.”


아들을 응급 캡슐에 눕혀 놓고 잠시 앉아 있으니 A와 B에게도 간호 로봇이 다가온다. 


“왼팔을 걷어 제 앞에 있는 파란색 쿠션 위에 올려 주십시오.”


로봇의 지시에 따라 기본 검사를 마친 A와 B, 둘의 대화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세 살 될 때까지 키우면서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져 본 적 없는 아이였는데 무슨 일일까?”


“그러게,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하필 생일날 이럴 게 뭐람…”


Y박사가 나타났다. 


“두 분 잠깐 제 방에서 뵙죠.”


“아이는 어떤가요? 그냥 좀 체한 거죠? 아니면 감기일까요?”


Y박사의 방으로 들어온 B는 박사를 다그친다. 박사는 천천히 입을 연다. 


“아드님의 증상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증상입니다. 폐와 간, 콩팥 등 모든 장기가 손상을 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에는 보고된 적이 없는 증상입니다. 아무래도 심각하게 변형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조사를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무너져내리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A가 묻는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우리 아들이… 정말로 치료법도 없단 말인가요?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아이인데, 죽는다구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보건당국에 보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두 분도 병원 내 제한 구역에 머물러 계셔야 합니다.”


“이건 말도 안돼요.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방문이 열리며 안내 로봇이 두툼한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정부의 긴급 방역 지침에 의거하여 두 분은 가방 속의 방역복을 입으시고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실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전기 충격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Y박사 역시 로봇이 건네주는 흰색 방역복을 걸치는 중이다.


밝혀지는 사실들


긴급하게 병원 한 편에 마련된 음압 격리 병실, 나지막이 에어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고 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다. A와 B는 망연자실한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하루 종일 아이와 놀이공원에서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했는데, 아이는 응급 캡슐 안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고, 둘은 격리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병실 한편에 놓여 있는 TV에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뉴스만이 흘러나올 뿐.


가벼운 노크와 함께 두툼한 마스크를 쓴 Y박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A와 B는 일말의 희망을 품으며 그를 바라본다. 마스크 위, 두꺼운 안경에는 김이 살짝 서려 있어 표정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일단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두 분에게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두 분은 이제 격리 대상이 아닙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다만 좋은 뉴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아이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아직 위독한가요? 조금도 나아지지는 않았나요?”


Y박사 역시 비슷한 또래인 이 부부에게 앞으로 건네야 할 이야기가 쉽사리 나올 리 만무하다. 몇 번의 헛기침 끝에야 입을 뗀다.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으로 볼 때 바이러스 탓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적이 없는 신종 바이러스이고,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본 결과 30여 년 전에 사라진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나옵니다. 대략 75% 정도 유전자가 일치합니다. 새로운 바이러스이니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드님은 이미 감염이 되었으니 백신은 의미가 없지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우리 아들은 그럼 죽는다는 건가요?”


황망해하는 B 옆에서 서둘러 검색을 해 본 A.


“코로나 19는 이미 30년 전에 끝난 병이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노인들이 주로 피해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때도 3년 정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가까스로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어 뒤늦게나마 소멸이 된 것이지요. 코로나 19가 변형이 되면서 이번에는 영아와 유아에게 치명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드리는 저로서도 답답하기만 합니다만 현재로서는 아드님의 치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미래를 기다려 보는 수는 있겠습니다.” 


일말의 희망


“미래를 기다린다뇨?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제발 속 시원히 말씀을 해 주세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A로서는 느려 터진 Y박사의 말투에 속이 타들어간다. 당장은 아무것도 못하면서 막연히 미래를 기다린다니… 이게 의사가 할 소리인가?


“몇 년 전에 상온 핵융합 기술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죠? 그 당시 엄청나게 뉴스에서 떠들어 댔던…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집중하여 중력장을 왜곡시키는 기술이 얼마 전에 개발되었고요.”


“어려운 이야기는 됐고요, 그게 우리 아들 치료하고 무슨 상관이라는 겁니까?”


“간단히 말해서 타임머신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과거로는 갈 수 없지만 미래로는 보낼 수 있는. 불치병 환자들을 미래로 보낸다는 거지요.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을 수도 있는 미래로 말입니다. 의료분야에서의 임상실험은 최근에 허용되었어요. 아직 성능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나 보호자가 강력히 원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 말씀은 우리 아들을 미래로 보낸다는 건가요? 치료제가 나왔는지, 인류가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미래로 말인가요?”


“제가 보내자고는 이야기 못합니다. 부모님의 선택일 뿐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아드님은 길어야 한 달? 어쩌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해도 서너 달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바이러스 전염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라고 해도 아드님 가까이 갈 수도 없고요. 지금 상황에서는 아드님의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은 부모님이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죠? 죽어가는 아이를 미래로 보내 놓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가라고요? 미래로 보내면 언제로 보낸단 말이에요?”


“저로서는 최선의 방법을 말씀드린 겁니다. 코로나 19의 케이스를 볼 때 최소 3년은 지나야 할 겁니다. 그동안 의료 기술도 많이 발전했으니 어쩌면 그 보다 빠를 수도 있겠지요. 안전하게 가려면 5년 후가 어떨까 싶습니다만…”


5년의 기다림


“여보, 벌써 5년이 지났네…”


“그러게…, 처음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걱정을 했었는데 말이지.”


“엄마, 아빠, 오늘 오빠 만나는 날이지? 얼른 병원에 가자. 오늘이 오빠 생일이니까 화단에서 꽃을 뽑아서 꽃다발 만들어야지.”


2062년 6월 14일, A와 B가 미래로 보낸 아들이 도착하는 날이다. 아들은 5년 전 세 살짜리 어린아이지만 이들은 그 사이 5년의 세월만큼 중년이 되어 있다. 아들을 미래로 보내고 얼마 후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바이러스 유행이 번졌다. 몇몇은 치료법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며 아이를 미래로 보냈고, 형편이 안되거나 미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비참했던 상황은 다행히 1년 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종식되었다. 초기 A와 B의 아들에게서 채취했던 바이러스 표본 덕분에 코로나 19에 비해서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슬픔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지만 말이다. 


죽어가는 아들을 미래로 보낸 후 부부는 엄청난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두 사람은 이혼의 위기도 겪어야 했다. 1년 후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아들은 더 이상 죽어가는 아픈 아이가 아니었다. 이미 완치되어 마당을 뛰어노는 아이였다. 다만 아직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 잊는다면… 


새로이 희망을 찾은 부부는 그 사이 딸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로 세 살이다. 오빠와 여동생이 같은 나이라는 것을 설명하려면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둘째 덕분에 미리 보내 놓은 아들을 조금은 더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아들이 새롭게 살아갈 세상에서는 두 아이가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들을 보냈던 오전 10시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부지런히 딸의 머리를 빗겨주고, 예쁜 옷을 골라 입혔다. 화단의 꽃을 꺾으면서 묻혀 온 흙먼지도 털어 주어야 했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운 적은 처음이었고, 병원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졌던 것도 처음이다. 벌써 5년이라니…


사라진 아들


병원 응급실은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 로봇으로 분주하다. 5년 전에 보낸 아이의 치료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 A와 B는 응급실 옆 대기실에서 딸의 손을 꼭 잡고 10시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 응급실이 분주해진다. A와 B에게도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별 일 아닐 거야.’라는 눈빛을 주고받는다. 


대기실로 Y박사가 들어온다. 표정이 어둡다. 


“아드님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조금 더 기다려 보기는 해야겠습니다만…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 5년 전, 3년 후로 보냈던 아이들도 모두 무사히 다시 만나 건강하게 완치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왜 우리만? A와 B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오빠 왜 안 와? 올 때 안됐어? 10시에 온댔잖어.”


“그러게… 좀 늦는가 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겨우 정신을 추슬러 어린 딸에게 이리 대꾸는 하지만 앞은 여전히 캄캄하다. 


‘오늘만 기다렸는데… 5년 동안 오늘만 기다리면서 살았는데… 아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몸도 만신창이인 어리디 어린 녀석이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이런 일이…’


대기실을 나가는 Y박사의 뒷모습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것은 처음이다. 5년 전 아들을 미래로 보내자는 이야기를 꺼낼 때도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그때는 한 가닥의 실 줄이라도 잡으려는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일말의 희망까지 사라져 가고 있다. 세상은 다시 5년 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절망적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5년 후로 보내고 나서, 죽어가는 이웃들의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나마 미래로 보낼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부들부들 떨리는 부부의 슬픔과 분노가 적막한 대기실을 야금야금 채우고 있다.


로그 분석


“타임머신의 로그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5년 전의 데이터를 해석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 점 사과드립니다.”


아들이 사라진 이후 Y박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그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부부 앞에 모습을 드러내 봐야 슬픔만 배가시킬 뿐. 


처음 보는 엔지니어는 무미건조한 설명을 이어간다. 


“로그 분석 결과 핵융합 에너지를 사용하여 중력장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양자 얽힘 현상이 발생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너무 미세한 현상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인식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발생할 수 있는 확률도 지극히 낮아서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요.”


“어려운 이야기는 다 집어치우고, 결론이 뭡니까?”


A의 인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죄송합니다. 상심이 크시지요. 간단히 말해서 아마도 아드님은 과거로 갔을 확률이 97.45%라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과거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과거로 갔단 말입니까?”


“5년 전에는 불가능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중력장의 얽힘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런 경우 예정된 미래가 아닌 불특정한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A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5년 동안 모아 놓았던 슬픔과 후회, 게다가 기대까지 증폭되어 분출되는 흥분이기에. 


“Y박사는 걱정할 게 없는 확실한 기술이라고 했다고요. Y박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와서 중력장이 어떠니 양자역학이 어떠니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Y박사님은 지금 해결 방법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 대한 보험을 들어 놓으신 것이 있으니… 원무과에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


“당장 꺼져요! 보험이라니, 이게 돈으로 해결될 문젭니까?”


유전자 분석


소리도 없이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Y박사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당신이 얼굴을 비춥니까?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겁니까? 내 아들을 어떻게 할 겁니까? 보험 같은 소리 하려고 한 거라면 지금 당장 나가세요. 전화기라도 던져서 얼굴을 박살내기 전에…”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이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슬퍼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제 말을 잠깐만 들어 보시지요.”


도대체 지금 상황에서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 A의 마음 같아서야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그래도 지난 세월 동안 듬직한 의사로서 가족을 돌봐왔던 Y박사인지라 잠시 흥분을 참는다. 


“5년 전 오늘, 아드님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 두 분도 기본 검사를 받으신 거 기억나십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괜히 우리에게 원인을 돌리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지금 나가요.”


“당시 유전병력을 조사하느라 두 분의 유전자 정보도 검사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드님의 모계 유전자와 어머니의 유전자, 부계 유전자와 아버지의 유전자를 검토했었지요. 물론 유전자로는 아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요?”


“조금 전에 아드님과 두 분의 유전자 전체를 놓고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아드님과 A 씨의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거든요. 모계 유전자는 다를 수밖에 없어야 하는데… 혹시 A 씨의 어머님이 생모 맞으신가요? 두 부부가 쌍둥이 일리는 없잖아요?”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요? 자세히 좀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3살 때부터 저를 키우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A 씨가 아드님이신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 에러로 과거로 떨어진 아드님이 기적적으로 삶을 이어나가 A 씨로 성장하신 거죠. 2025년이었다면 아직까지 공해와 환경호르몬으로 시달리던 시절이었으니 30년 후의 깨끗한 환경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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