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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Oct 08. 2015

[내가 사랑하는 출사지 #12] 시화호

거대한 송전탑, 그 옆의 조각배

 



 집에서 나와 외곽순환고속도로까지 15분,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장수인터체인지까지 대략 25분,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오이도 까지 10여분이면 시화방조제다. 주말 어정쩡한 시간이면 외곽순환도로 인천 구간이 좀 막히기는 하지만 대략 한 시간 내외면 도착한다. 오이도 지나 시화방조제를 건너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형도로 가는 또 다른 방조제가 나온다. 내가 주로 사진 찍으러 오는 구간의 시작이다.


  왼쪽으로 방금 건너온 시화방조제가 바다와 시화호를 가르고, 그 너머로 멀리 송도 신도시의 고층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 번에 두 번은 해무 때문에 송도의 고층건물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늘 세우는 길가 빈 자리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가방을 챙긴다. 대부분의 경우 삼각대도 챙긴다. 한 낮이지만 ND400, ND1000 필터를 쓰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이 지점은 일 년에 두 번 사진가들로 북적거린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송전탑의 행렬이 두 줄기로 나란히 서 있는 한 가운데로 해가 떠 오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별 생각 없이 언제나처럼 새벽에 이 곳에 왔는데 도대체 차를 세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야 했다. 이 근방의 사진가들은 여기 다 모였다 싶을 정도였으니...


  내가 처음 이 곳을 찾은 이유 역시 송전탑 때문이었다. 파란 호수 위,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송전탑들은 제법 매력적인 피사체였다. 장노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손쉽게 물결을 지울 수 있는 시화호의 잔잔한 수면도 자주 찾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디지털카메라에서 평상시에 셔터를 열 수 있는 한계는 30초 정도. 그 이상이 되면 화상을 담는 소자에 열이 발생해서 화질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서해 바다의 경우 1분에서 3분 정도, 파도가 심한 동해의 경우는 10분 이상 셔터를 열어 놓고 노출을 줘야 물결이 사라진 사진을 얻는다던데, 디지털카메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두 번, 세 번 이 곳을 찾다 보니 그 날 그 날의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의 색과, 장노출로 지워지고 남는 물결의 패턴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흐린 날은 어떨까?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 있는 하늘은 좋은 배경이 될 것 같군.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찾아 틈만 나면 시화호를 찾게 되었고,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그냥 카메라를 챙겨 나와 시화호로 향하곤 한다.


  시화호를 다니게 되면서 이 곳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주변의 방조제를 만들기 위해 형도라는 돌섬이 채석장으로 사용되어 반 이상 깨져 나갔다는 것, 바다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서해의 주민들이 어느 날 바다가 말라 버리면서 집과 동네를 떠나야 했다는 것, 상괭이라는 민물 돌고래가 시화호에 살고 있었다는 것, 매번 눈에 띄던 손바닥만 한 조각배들이 낚시꾼들을 상류로 안내하는 낚싯배였다는 것 등등... 미처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이 시화호의 주변에 숨어 있었다.


  시화호를 가게 되면 주변의 풍광으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맞은편 송도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이제 제법 성숙해 보인다. 비죽비죽 솟아 있던 타워크레인들은 거의 철거되었다. 건물들의 실루엣들이 제법 매끈한 라인을 형성한다. 그만큼 성숙하고 세련되어 가고 있다. 형도의 채석장은  지난번 보다 눈에 띄게 깎였다. 채석 작업이 끝나면 저 곳은 어떻게 마무리될는지, 물음표 하나 추가.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다 보면 훌쩍 해가 기운다. 운이 좋으면 멋진 석양 사진은 덤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 우선적으로 사진과 카메라의 기술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과 최대한 가깝게 카메라로 담는 것, 사진을 잘 찍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단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지 않으면 본 것보다 훨씬 환하게 날아가 버린 사진이나, 도대체 컴컴하게만 계속 찍히는 카메라 때문에 분통 터지는 경험을 계속 겪어야 한다.


  다음으로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지금 이 순간 왜 사진을 찍고 싶어 졌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시각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숲 속에서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 나뭇잎을 스치면서 한 풀 꺾인 바람의 살랑 거림일 수도 있고, 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그 상쾌함을 더욱 돋구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고 눈 앞의 풍경을 찍으면? 사진 속에 풀숲의 내음이나 새들의 울음소리를 담을 수는 없다. 오감을 이용하여 마음껏 즐기더라도 사진을 찍을 때에는 철저하게 시각에 의존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질서, 혹은 무질서, 반복되는 패턴, 혹은 그러한 패턴의 어그러짐, 색상 간의 균형 혹은 불균형, 이어짐 혹은 끊어짐 등등.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 혹은 사물이 멋지다고 느껴지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느껴진다면 왜?라는 물음을 던져 보길 바란다. 시각 데이터를 읽고 분석하는 훈련,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단지 습관의 문제일 뿐.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사물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너무나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눈을 통해 전혀 생소한 이야기들이 들려 오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들을 제대로 담아 전하고 싶은데 도대체 그럴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게 바로 사진이다. 명확할 것 같은 시각 정보도 문자나 다른 언어적 도구가 없다면 모호해진다. 내가 담은 이야기를 제대로 담았는지, 보는 사람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을는지 자신이 없다. 결국 사진가는 툭 하고 사진 몇 장을 던지면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향유하여야 한다. 특히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현대 예술 사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떤 사진은 메시지가 아닌 물음표만 던지는 듯한 사진도 있다. 시각 언어의 모호함을  극대화시킨 것. 앞으로 이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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