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안과의 첫 만남
1990년,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공군 학사 장교로 입대했다. 졸업하기 전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하여 제일모직에서 보름 정도 OJT를 받았지만, 제대하고 복직할 생각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꿈의 직장이겠지만 그 당시 삼성은 연봉도 높지 않고 일은 많이 시키는 힘든 직장이라는 인식이었다. 물론 이건 서울대라는 졸업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부대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서울에서 정보를 다루는 부대로 배속받았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훈련받던 4개월을 제외하면 남들이 보기에 출퇴근하는 직장인하고 다를 게 없었다. 정장 차림으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내 업무는 군 관련 뉴스를 필터링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부대에는 경찰이나 언론사 협조를 담당하는 하사관과 군무원으로 구성된 ‘활동관’들이 여럿 있었고, 나는 분석관으로서 이들이 보고하는 내용과 신문 기사를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신문사의 외근 기자와 편집부의 역할 분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가판대에 가장 먼저 깔리는 석간신문을 가져와 분석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보고 체계는 철저히 아날로그였다. 활동관이 수집해 온 자료를 요약하여 분석관인 내가 한두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 건네면, 타자기 숙련도가 높은 병사, 흔히 말하는 '타자병'이 보고서로 완성했다. 보고서를 상부에 올리기 전까지는 이른바 ‘빨간펜 작업’을 수차례 반복했다. 담당 분석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타자병은 투덜거리며 수정액(화이트)을 바르고 그것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글자를 덧쓰거나, 아예 처음부터 다시 타자를 쳐서 보고서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지루한 과정 속에 퇴근 시간은 늘 훌쩍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정보 부대답게 활동관에게는 삐삐(무선호출기)가 지급되어 있었다. 추가 정보가 필요할 때 삐삐로 호출하면,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오거나 손으로 휘갈겨 쓴 메모를 팩스로 보내왔다. 종종 팩스 한구석에는 ‘** 다방’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곤 했다. 당시 다방은 영업사원이나 기자 등 외부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에게 이동식 사무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여 있는 다방이나 카페가 있을 정도였다.
물론 당시에도 휴대전화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다. 지금의 SK텔레콤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011’ 번호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만 원에서 400만 원을 호가하는 단말기 가격과 매달 수십만 원씩 나오는 통화 요금을 감당하기에 우리 군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물며 군인 월급으로 그것을 사용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포르셰나 벤츠 S클래스를 굴리는 수준이었으니까. 결국 삐삐와 공중전화, 그리고 다방의 팩스가 당시 우리에겐 최첨단 통신 장비였던 셈이다.
부대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사무실 구석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컴퓨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관리를 담당하던 하사관에게 물어보니 정보 검색용으로 지급되었으나 정작 쓰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담당 하사관조차도 관리만 담당할 뿐 사용법은 모르고 있었다. 타 부서의 컴퓨터 담당 하사관을 수소문해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컴퓨터 개론’ 시간에 다루던 것보다는 훨씬 편리했다. MS-DOS 책을 사서 독학하고 보급 당시 배포된 문서를 뒤져 정보 검색 방법을 익혔다.
C:\CD ***로 디렉터리를 이동하고 C:\iyagi\i를 입력하자 선명한 파란 화면이 나타났다. 여기에 ATDT 명령어를 입력해 전화번호를 넣으니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지글거리는 신호음이 들리더니 곧 ‘천리안’ 화면이 떴다. 컴퓨터가 이렇게 쉬운 것이었다니, 컴퓨터 개론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배웠나 싶었다.
화면 속에는 온갖 정보가 넘쳐났다. 내가 필요한 오늘의 뉴스도 석간신문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는 활동관의 보고서와 석간신문만 목 빼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기사를 미리 검색해 원고를 써두고, 나중에 들어오는 보고서는 팩트 체크용으로만 활용하면 그만이었다. 업무에 익숙해지자 오히려 활동관에게 추가 확인을 요청하는 일도 생겼다. “아니, 이 소위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 석간에나 나올 내용인데요?”
지금 기준이라면 고장 났다고 호들갑을 떨 만큼 기사 한 줄이 나타나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의 2400 BPS 모뎀이었지만, 당시 나에게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타임머신이었다. 그리고 그 기계는 정말로 ‘타임머신’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나의 퇴근 시간이 획기적으로 빨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