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쉽지 않아

쉽지 않았던 컴퓨터와의 첫 만남

by 기타치는 사진가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친구들과 약속을 하려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집에 전화해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전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누가 친한 친구이고 주로 어디서 만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엄마, 혹시 진성이한테 전화 오면 중국집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는 물론이고, "요즘 희진이 전화가 뜸하던데, 혹시 헤어진 거야?" 같은 대화가 일상이었으니.


과 사무실 게시판에 “**모임 몇 시, 어디’라고 메모를 붙이고, 2차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 가위바위보로 한 사람을 뽑아 근처 다방 게시판에 “~~는 어디로 올 것”이라는 메모를 붙여 놓아야 했다. 어느 정도라도 상권이 형성된 대학가 주변에는 반드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시판이 있었다. 신촌이라면 독수리 다방이 그랬다. 이 와중에 여학생이 많은 모임의 쪽지를 뒤져 옆 자리에서 만남의 기회를 모색하는 용의주도한 친구도 있었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삐삐조차도 구경하기 힘든 시기였다. 적어도 정보통신의 측면에서 보면 60년 대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는 지금의 AI보다 훨씬 더 막연하고 흐릿하지만 AI만큼이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80년대 후반이니 이미 중요한 데이터는 거의 대부분 컴퓨터로 관리되는 시절이기는 했지만 아직 개인이 컴퓨터를 만질 일은 거의 없었다. 간혹 자녀가 컴퓨터 귀재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나 미래의 해커 꿈나무가 부모님을 졸라 8비트나 MSX 컴퓨터를 장만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베이식으로 예제 프로그램을 짜보다가 아주 비싸고 번거로운 게임기가 되곤 했다.


이미 83년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 대신 ‘올해의 기계’로 PC를 표지에 실은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나에게 컴퓨터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입시 때 컴퓨터 채점을 위해 일반 사인펜이 아닌 OCR 전용 사인펜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 사항을 들을 때, 그리고 통장이나 성적표에서 보게 되는 적응하기 힘든 도트 프린터 글꼴과 종이 가장자리에 나란히 뚫려 있는 구멍뿐이었다. 컴퓨터라고 하면 검은 화면에 초록색 글자가 찍히는 음극관 모니터를 떠올리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1981년 IBM PC가 출시되고 1983년 정부가 교육용 컴퓨터 보급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야말로 ‘시범적’인 수준에 그쳤고, 컴퓨터는 세상을 바꾸는 유용한 도구라기보다는 ‘언젠가는 배워야 하지만 어렵고 비싼 물건’에 불과했다. 특히나 고등학교를 문과로 졸업하고 경제학과로 진학한 나로서는 컴퓨터라는 물건에 손댈 기회가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시계는 지금보다는 훨씬 천천히 흘렀다.


손에 접할 수는 없었지만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은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경제학과는 ‘컴퓨터 개론’이 전공 선택과목이었고 이미 많은 친구가 컴퓨터 개론을 수강했다. 나 역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컴퓨터 개론을 신청했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어렴풋하게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입력-연산-저장-출력 장치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구조라던가, 여러 가지 논리 회로를 가지고 복잡한 연산을 하는 과정, 플로우 차트로 업무 흐름을 정리하여 논리적인 완결성을 만들어 내는 절차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과제로 주어진 프로그래밍 실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론적으로 컴퓨터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과 코드 하나하나를 입력해서 전체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사람의 언어로만 살아왔던 20여 년의 세월의 벽은 단 두어 달 만에 기계의 언어로 갈아치우기엔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한 학기 먼저 수강했던 친구의 과제를 베껴 좋은 점수를 받기는 했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이라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그나마 내가 손으로 다루었던 컴퓨터에 가까웠던 물건이 몇 개 있었다. 흔히 ‘공학용 계산기’라고 부르던 물건이 그중 하나였다. 경제수학, 경제통계학, 계량경제, 수리경제 등 수학 관련 과목을 들을 때 필요하다고 해서 구입했지만 제대로 써 본 기억은 없다. 그나마 타자기 대신 구입한 워드프로세서 전용기는 리포트 작성할 때 유용하게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일반 종이보다 훨씬 비싼 감열 용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쓸 수는 없었다. 다만 타자 속도를 올리는 데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결국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살면서 컴퓨터로 먹고살 일은 없지 싶었다. 대학원 시험을 떨어지고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데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나면 취업할 수 있는 직장은 빤한데 굳이 컴퓨터를 공부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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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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