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4년 전, 양조장을 만들면서 필요한 모니터링과 제어 장치 여러 개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 비용 절감의 압박도 있었지만, 내 손으로 만드는 막걸리인 만큼 장치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난생처음 회로 기판에 납땜을 하면서, 전자 부품의 기능을 살펴보면서, 프로그램을 작성하면서 매 순간 30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LED에 왜 저항을 연결해야 하는지 검색하다 보면, 늦은 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컴퓨서브에 접속해 채팅하던 기억이 올라왔다. 암호 같기만 하던 영어 단축어들, 예를 들면 LOL(laughing out loud) 같은 약어를 익히며 접했던 지구 반대편의 세상은 마냥 신기했다.
납땜 연기 속에서는 책을 뒤져가며 로터스 123과 DBase3를 공부하던 20대 후반의 내 모습이 보였다. 전혀 몰랐던 분야에 호기심만으로 덤벼들던 무모함, 과연 밤늦게까지 이런 짓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갸우뚱하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던 모습. 3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여전히 거울처럼 20대의 나와 50대의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에 잠깐씩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만드는' 일이 왜 나에게 그리도 매력을 주었던 것일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과학 숙제로 전자석을 이용한 부저와 모르스 송수신기를 만들어야 했다. 구리선을 구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 공장 친구에게 부탁해서 팔뚝만 한 구리 코일 뭉치를 가져다주셨다. 반나절 동안 연탄 냄새를 맡아가며 굵은 시멘트 못을 달구고 식히기를 반복했다. 이 못에 구리 코일을 감고, 사과궤짝을 톱으로 잘라 받침대를 만들고 함석 조각을 잘라 부품을 만들었다. 1.5 볼트 건전지로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해 결국 6 볼트 사각 배터리를 써야 했다.
숙제를 내던 날, 친구들이 가져온 것은 손가락 두 개만 한 키트 제품이었다. 건전지 홀더까지 갖춰진 깔끔한 물건이었다. 문방구에서 조립식 키트를 판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쇼핑백에서 주섬주섬 꺼낸 내 과제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주변 친구들의 놀란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도시락통보다 조금 작은 배터리에 연결된 내 부저는,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모기만 한 소리를 내던 친구들의 것과는 달리 교실을 엄청난 소리로 울려댔다. 어쩌면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꼈던 건 바로 이 순간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가장 신나고 재미있게 '만들던'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할 때도,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닐 때도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 기억에는 천리안을 '만들던' 일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냥 내가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삶을 바꿔온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커다란 흐름에 허망하게 쓸려가 버린 것도 천리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거의 모든 순간 '만드는'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만드는' 일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순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회사를 옮겼던 이유도 결국 '만드는' 일에서 멀어진 탓이었다.
정말 열정적으로 보냈던 6년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인지, 30년 전의 20대가 지금의 젊은 친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 살아가는 모든 세대 중에서, 아마도 내 나이 즈음의 세대가 가장 큰 변화를 겪으며 살아온 세대가 아닐까 싶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신문·방송·전화·편지를 접하며 성장했지만, 이제는 그것들과 거의 멀어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30년 전의 이야기가 꼰대의 라떼 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글을 정리하면서 내내 걱정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 글은 세상에서 밀려나가는 한물간 세대의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차라리 어느 프로그래머의 무림 생존기로 읽어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글이 결코 '나 잘난 놈이야'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최면술사의 회중시계이기를, '나도 그 시절엔 엄청 고생했었지'를 추억하게 만드는 친구의 사진첩이기를 바란다. 혹여라도 AI의 물결에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자그마한 나무 판때기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