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타치는 사진가 Oct 11. 2015

걸어도 걸어도

마냥 걷다보면 어찌 되겠지

걸어도 걸어도, いてもいても, 2008년, 일본

조용한 도쿄 인근 해변가 마을, 산 위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평화롭다. 한가로운 마을에 조용한 기적소리를 퍼뜨리며 빨간 기차가 지나간다. 영화는 전형적인 일본 소도시의 조그만 골목을 무대로 한다. 동네 의원을 하던 아버지는 녹내장으로 인해 더이상 진료를 하지 못하는 상태, 어머니는 일찌감치 친정에 도착한 딸내미 가족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애딸린 유부녀와 결혼한 막내 아들은 완고한 아버지를 만나는 게 영 불편하다.

다들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아버지 역시 여느 아버지만큼, 딱 그만큼 무뚝뚝하다. 새롭거나 이상할 것은 없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고, 역시나 막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껄끄럽다. 조금 심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가족이 모두 모인 그 날이 그 집의 큰 아들의 기일이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 오붓한 대화들이 이어지지만 그 속내들은 다들 조금씩 불편하다. 영화가 이어지면서 이 불편한 속내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중첩되면서 미묘한 감정선으로 꼬여나가기도 하고, 섬뜩할 정도로 광기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들이 부딪혀 불꽃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저 누군가 발산을 하면 주변에서는 묵묵히 흡수할 뿐, 누구도 정면으로 부딪히지는 않는다. 일본 영화에서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이기도 하고, 어쩌면 일본 사회가, 일본 사람들이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영화는 뚜렷한 해결을 제시하지 않은 채 끝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등은 해결되어 있다. 해결되었다기 보다는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가면서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 어쩌면 인간사의 모든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책임하게 갈등을 내버려 둔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이 멍들고 망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게 내버려 두는 모진 영화의 흐름 역시 일본의 속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잘 만들어진 워크맨의 내부처럼 섬세하고 솜씨좋게 만들어진 영화. 특별한 기승전결이 없어 보이지만 끊임없이 자그마한 기승전결이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켜 나가는 연출 솜씨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보라 일으키는 파도는 없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그런 잔잔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바다와 같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는 기차를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는 영화. 5점 만점에 4.5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