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노래-벤과 셀키 요정의 비밀
백야의 북유럽 어느 얼음 궁전인 듯, 아주 따뜻할 것 같은 퀼트 양탄자인 듯,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펼쳐지는 배경에 흠뻑 빠져 버렸다. 마치 아주 예쁜 그림책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 인상파의 색상으로 그린 입체파 회화 작품을 보는 기분.
아일랜드 외딴 등대섬에서 홀아버지와 함께 자라던 오누이가 할머니에 이끌려 도시로 오게 되는데, 결국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몰래 할머니 집을 빠져나오고, 모험은 시작된다. 인간과 요정의 세상, 자식의 슬픔을 견디다 못한 모정이 불러일으킨 의도치 않은 비극. 많은 경우 선의에서 시작된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악행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우여곡절을 겪으며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전 세계 어디든 바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를 보면 쓰나미에 대한 공포를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바다의 노래에선 주인공 벤이 수영을 전혀 못하는 것으로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
바다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물고기 소녀 포뇨가 그렇고, 벤의 동생 시얼샤가 그런 존재이다. 은유적으로 토끼를 바닷속으로 인도했던 거북이도 그렇고, 대놓고 반반 섞어 버린 인어 공주 역시 그 연장선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미약한 인간이 바다가 주는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던 청이처럼. 벤은 동생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물 속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시얼샤의 친구인 물개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고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영화. 그러나 진도 앞바다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배신당하고 수장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냥 빠져들 수는 없는 슬픈 영화로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