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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Feb 26. 2016

짓밟힌 우리 역사에 대한 진혼곡 - 귀향

이제라도 고향을  찾아가시기를...

과장 없이, 욕심 없이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거창 산골에서 천진난만하게 친구 노리개를 탐내던 14살 여자아이는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가며 역사의 톱니바퀴에 산산이 갈려버리고 만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비참한 이야기들이야 익히 알고 있으리라. 그 빤한 이야기들이 각자의 삶의 여정과 얽히고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도 얽히면서 영화는 힘을 얻는다. 교과서에 실리고 끝날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것,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고통이며,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 살풀이를 하는 두물머리 현장에 언뜻 스쳐 지나가는 일본 군인의 모습에서 소름이 끼친다.


솔직히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클라우드 펀딩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이 컸다. '영화라도 봐줘야 되겠다.'는 어쩌면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었다. 어쩌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생각보다는 거대 자본으로 편입되어 겨우 이틀(파주 출판도시의 경우) 상영되는 영화판의 현실에 대한 반발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시작되고 여자아이들의 모습에 시시때때로 두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안쓰러움, 불쌍함, 분노, 슬픔, 울화... 온갖 감정이 터져 나온다. 일본 군인의 잔혹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런 상황으로 우리의 딸들을 내 몰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나라의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고...


머나먼 전장에서 스러져간 영혼들은 나비가 되어 고향을 찾는다. 나비는 영계와 현실계를 매개하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으로 뉴욕의 태풍을 일으키는 거대한 힘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현실이라는 버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것, 어쩌면 스스로의 날갯짓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이다. 7만 5천 명의 깨어있는 시민이 스스로를 조직함으로써 15여 년 만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고, 개봉 첫날 영화를 관람한 15만 명의 관객 역시 스스로의 날갯짓을 시작한 나비들이다. 이들의 날갯짓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이 거대한 태풍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눈물이 흘러 차마 엔딩 크레딧으로 올라오는 7만 5천 명의 명단을 다 볼 수 없었다. 그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미안함과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잊혀가는, 심지어 일부러 지우려고 하고 있는 역사를 현재로 끌어온 것에 대한 고마움 탓일 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5억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비참했던 과거사에 대한 신파조의 넋두리 혹은 대책 없는 분노가 아닌, 어린 영혼들에 대한 진혼곡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음을, 역사의 한 챕터가 아니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숙제임을 외치는 영화이다. 꼭 관람하고 나에게도 날개가 달려 있음을, 그 날개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음을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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