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사진으로 담는 음악
팝송이라는 걸 처음 듣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비지스와 비틀스도 헛갈려 가면서도 라디오에서 칭기즈칸(Dschinghis Khan)이나 옛써 아캔 부기(Yes Sir, I can Boogie, Baccara) 같은 노래가 나오면 밥 먹다가도 라디오 앞으로 뛰어가서 끝날 때까지 듣곤 했다.
서대문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때는 Pop PM2라는 무료 잡지를 구하기 위해 광화문 금강제화로 뛰어가곤 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제법 그럴 듯한 락 마니아로 행세했었다. 대학엘 가면 그룹사운드를 할 거라며 졸업 선물로 아버지와 함께 낙원 상가에서 일렉 기타를 사 오기도 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양의 대중음악과는 멀어지게 된다. 전혀 모르고 살아왔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동안 열광해 왔던 음악들이 제국주의 문화 침략의 수단으로 느껴지기도 했었고, 민중음악의 절절한 울림이 더 끌리기도 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까지 술 마실 일이 생기면 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이중적인 생활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취직하고 결혼하면서 록음악은 내 인생의 저편에 화석처럼 남게 된다. 문득 생각날 때 찾아 듣기는 해도 과거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수단일 뿐, 먼지 앉은 앨범을 뒤적거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0줄 초입쯤, 사진이란 취미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동호회를 통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음악을 접하게 된다. 기타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분, 공연 사진을 열심히 찍으러 다니는 친구, 이런 친구들과 가까이하면서 음반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음악가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소주 잔도 같이 기울이게 되고, 어쩌다 보니 라이브 공연까지 따라가서 사진을 찍게 된다.
진공관 앰프를 통해 울려 나오는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를 처음 들었다. 녹음된 소리가 아닌 실제 눈 앞에서 연주하는 소리를. 그동안 들었던 음악은 레코딩된 트랙 안에 통조림된 소리였다. 연주자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라이브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살아있는 소리였다. 아무리 잘 만든 짜장라면이라도 동네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이치라고나 할까.
내가 귀를 닫고 있던 동안에도 음악은 살아서 스스로의 생명을 키워 나가고 있었고, 이제 그 음악들은 내가 살아있음을 귓전에서 외쳐댄다. 생소한 밴드의 낯선 음악을 들을 때에도 라이브로 듣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오디오 장비로 듣는 명반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생명력이 있다.
음악이란 것, 바래가는 일기장의 한편에 끼워두고, 이따금씩 꺼내서 들춰보는, 그런 추억거리로만 남겨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울림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를 담아 두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를 벗어난 과거로의 침잠이라면 너무나 소중한 무엇을 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단연코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내 귀로 직접 들어오는 드럼 소리의 파동이며, 마샬 앰프에서 만들어 내는 피크의 타격음이다.
7-80년대에 머물러 있던 나를 현재로 끄집어내어 준 홍대 라이브 씬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