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별의 목소리'부터 이어지는 시공간의 해석
수십억 년 동안 지각 아래 갇혀 있던 용암이 솟구쳐 오르는 분화구는 지하계의 끝이자 지상계의 시작점이다. 분출되어 나온 용암은 지나가는 모든 길의 생명을 파괴하지만, 또한 새로운 땅을 만들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토대를 만든다. 분화구에 신성을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생명의 끝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화산의 분화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신성한 힘의 궁극의 모습이다.
끝이고 동시에 시작이라는 점에서 분화구는 특이점이다. 마치 블랙홀이 그렇듯이. 그렇기에 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특이점에서 신성한 힘을 얻게 된다. 분화로 인해 오목하게 파이게 되는 분화구(crater)는 테두리(crater rim)로 세상과 단절된다. 그 테두리까지 올라가지 않는 한, 밖에서는 분화구를 볼 수 없고, 분화구에서 밖을 볼 수도 없다. 한 발짝만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곳, 한 발만 밖으로 내밀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곳,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지평선(event horizon)과 닮아 있다.
외계인과의 전투를 위해 점점 더 깊은 우주로 향해가는 친구, 멀어질수록 그녀로부터의 연락은 더디어진다. 1광년에서 결국 시리우스까지... 8광년. 우주선은 웜홀을 통해 몇 광년쯤 순간 이동을 하지만 통신은 그렇지 못하다. 메일 한 통 보내고 답장을 받으려면 16년을 기다려야 한다. 같은 시공간이라고 하기엔 8광년의 거리는 영원이라고 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2년작 '별의 목소리'에서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출발한 남녀가 공간이 멀어지면서 서로 어긋나 버리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시공간의 어긋남과 남녀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별의 목소리'와 '너의 이름은' 두 작품은 서로 이어져 있다. 10여 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별의 목소리'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시공간의 어긋남이 발생한다. 화성 궤도에서 출발하여 목성의 유로파를 거쳐, 카이퍼 벨트를 지나 시리우스까지 여정이 이어지면서 불가피하게 8광년의 거리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같은 우주라는 공간의 공유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시간과 공간이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무리 없이 묘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는 그 과정이 역으로 벌어진다. 애초엔 공간의 어긋남뿐인 줄 알았던 것이 시간의 어긋남까지 겹쳐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독은 블랙홀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 버리는 블랙홀, 그곳은 어쩌면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지평선(Event horizon,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기도 한다.)을 도입함으로써 가까스로 시공간의 어긋남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분화구에서 벌어지는 막판의 사건들이 살짝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분히 나만의 독단적인 해석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을 통해 '별의 목소리'에서 한 단계 진전된 시공간의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그 해결 방안이라는 것이 시간의 지평선 밖에 없었겠느냐에 대해서는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신앙과 자연재해에 대한 경외심을 블랙홀과 시간의 지평선으로 해석하여 영화의 중요한 갈등구조를 해소하려 한 노력은 아주 돋보인다. 게다가 10여 년 전, 스스로 던진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도 고민하고 침잠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앞으로의 그의 작품을 기대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