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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31. 2017

보스턴과 사우스코리아, 같으면서 다른 것

스포트라이트, 노련함의 미학

사람 사는 것,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과 안정, 그리고 현상의 유지. 그 안에는 늘 크고 작은 다툼이 있다. 옳은 것과 나쁜 것의 다툼은 쉽사리 결판이 나는 편이다. 옳은 것과 옳은 것 혹은 나쁜 것과 나쁜 것의 다툼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이 서로 다를 경우 그 결판은 종종 머리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의 생존과 영속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논리다. 그러하기에 가해자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지금까지 조직을 유지해 왔던 질서가 깨진다면,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비용이 기존 질서 내부의 그름을 그냥 유지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편으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을 파편화시키려 노력한다. 소수의 일탈, 전체를 위한 희생, 개별화된 보상 등... "당신이 운이 없었을 뿐이며 우발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상투적인 대꾸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합의의 유혹.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역시 유혹이다. 영화에서는 한 마디로 일축한다. "It could have been you!" 당신의 일일 수도 있었다는 것. 저널리즘의 시작 역시 '나의 일일 수도 있다'라는 공감이다. 공감을 확산시키는 것, 저널리즘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노련한 저널리즘이 빛을 발휘하는 사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사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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