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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Feb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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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탈을 쓴 판타지... 절대반지의 귀환

문자는 언어를 기록하는 기호체계이다. 사용되는 언어에 최적화되어 문자는 발전한다. 그렇기에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문화적인 특성이 언어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일본어는 일본인들의 문화적인 특성이 반영되어 있고 한국어에는 한국 문화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특성은 일정 부분 문자에도 반영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자를 익히고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그 집단의 문화적인 특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어나 일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문화 체계에 동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자기의 언어로 다른 문화를 통역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하물며 우리와 전혀 다른 시공간 체계하에서 발달해 온 외계인의 문자 체계와 언어를 이해했다고 하여 우리가 그 시공간 체계 속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일단 우리와 동일한 우주 안에서 진화해 온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다른 방식으로 시공간을 다룰 수 있다는 것부터 과학적인 전제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다른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다른 우주에서 왔을 수도 있으니. 어쩌면 우주가 팽창을 멈추면서 시공간의 물리법칙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치자.)


외계인의 언어를 분석하고 연구하여 그들의 시공간 체계가 우리와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재미있고 기발한 과학적인 상상력의 발현이다. 그 발견을 위해 이론물리학자와 언어학자의 코라보레이션이 필요하다는 설정도 나름 이해할 수 있다. 컨택트의 전반부가 흥미를 끄는 것은 이러한 과학적인 상상력이 주는 재미일 것이다. 


우리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그들의 생각을 우리의 언어로 번역해 내고 그들의 시공간 체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는 다분히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시공간 체계에서 해석된 것일 뿐이다. 기호는 언어의 반영이고 언어는 문화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벳을 완벽하게 외운다고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해서 영어권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 역시 아니다.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 체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 말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것, 컨택트가 뒤로 갈수록 황당하고 당황스러워진 이유이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우리와는 달리 시간 차원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는 있다. 또한 중력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연구는 결국 우리의 과학 수준과 시공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시간이라는 차원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도저히 과학적인 상상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름의 과학적인 논리를 가지고 진행되던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절대반지'와 '사우루스의 눈'의 대결이 되어 버렸다. 외계인의 문자가 원형으로 구성되어 시작과 끝이 구분이 없다는 설정에서부터 어쩌면 절대반지의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SF는 Science Fiction이어야 한다. 과학적인 상상력이 작품 안에서 정합성을 가지고 정밀하게 펼쳐지는 소설, 개연성 있는 허구여야 한다. 종종 등장하는 Science Fantasy는 SF에 목말라하는 영화광들을 맥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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