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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Mar 16. 2017

화성과 지구를 잊는 동화 같은 판타지

Space Between Us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 년 반 정도 뉴욕의 여학생과 펜팔을 주고받았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쓰는 영어 편지가 어찌나 괴롭던지. 영어가 문제는 아니었다. 도대체 쓸 거리가 있어야 영작을 할 거 아닌가. 뉴욕의 고등학생은 무슨 활동이 그리 많은지, 모의국회, 모의 유엔총회, 자연보호 활동 심지어 옆 집 가든파티까지 오는 편지마다 겹치는 내용이 없었다.


반면 80년대 초반 한국의 고등학생의 생활이란 건 그야말로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학교-집, 어쩌다 영화관,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 결국 영어공부를 핑계로 구독한 영자신문을 통해 연극 공연을 보고 온 척도 하고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다닌 척을 해야 했다. 80년대 초반의 서울과 뉴욕은 어쩌면 화성과 지구 사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화성에서 태어나 지구를 동경하는 16세 남자아이의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다.


화성이 나오고 우주공간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SF라기보다는 동화다. 왕자의 입맞춤으로 백 년간의 잠에서 깨어난 공주의 그 후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어렵사리 지구에 도착한 가드너는 채팅 친구를 찾아내어 어지간한 사람은 열 번쯤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하기 힘든 다채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로키산맥 비슷한 풍경부터 가을색 물씬 풍기는 시골 산동네의 정취, 아빠를 찾는 길에 살짝살짝 지나치는 자이언, 아치스, 그랜드캐년 등 그랜드써클의 풍경들은 루트를 따질 필요 없이 지구를 찾은 화성인에 대한 선물이다. 어쩌면 10년 전 사진 여행 다녀왔던 그랜드써클 사진들을 뒤적거리며 언제 또 갈 수 있을지를  매번 궁리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친구가 1차 대전 때 썼을 거 같은 복엽기를 몰고, 기름 떨어져서 추락하고 나서도 멀쩡하며, 훔친 차를 계속 바꿔가며 몰고 다니면서도 경찰에 한 번도 안 걸리는 용한 재주에 대해서는 굳이 따지지 말고 넘어가도 될 것 같고. 동화이니까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를 본 셈 치자.


이 영화를 굳이 추천할 마음은 없다. 동화라고 실드를 쳐야 할 만큼 허술하고 엉성하다. 다만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과 그랜드써클 여행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오랜 기억 속의 펜팔 친구를 만난 듯한, 한 편으로는 황홀했던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화성에 다녀온 적이 있는 분이라면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삭막한 화성의 환경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이 간질거려 참을 수가 없어서 한 줄만 더 쓴다.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I'm your father...' 다스 베이더 경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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