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셩혜 Jul 29. 2020

금요일 밤, 맥주 한 모금 마신 걸 후회했다

 

머리가 멍해진다. 망치로 한 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오후 11시 42분. 꾹꾹 눌러 담은 후배 A 마음이 적힌 카톡 메시지를 보고 또 보다 금요일 밤, 맥주 한 모금 마신 걸 후회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시작되는 후배의 메시지. 짧지만 강한 그 메시지의 마지막 한 줄은 마치 초대장 같다. '○○병원 장례식장 제*호실 B.'

얼마 전 A를 만났을 때 분명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뜻밖이다. 그러면서 '왜, 왜' 하며 온갖 상상을 한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데, 맥주 한 캔이 발목을 잡는다.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인 A는 유독 마음이 쓰이는 지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했고 전공자들 사이에서 비전공자로 고생도 많았지만,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뤘고 멋지게 필모 그래프를 쌓으며 성장 중이다. 그래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후배 중 하나이다. A의 친언니 B는 나랑 동갑이다. 비슷한 시기 결혼했고, 비슷한 지역에 살았다(사실 횡당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 곳에서 B도 신혼을 시작했다). 종종 A를 통해 B소식을 듣곤 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장례식장은 빈 호실이 없을 만큼 가득 찼다. 코로나 시대라 입구부터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체온을 측정한다. 그 뒤로 커다란 전광판이 호실 정보를 알려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칠 전광판일 텐데, 그 앞에 줄 서 개인정보를 남겨야 하니 유독 크게 다가온다. 전광판 속 영정 사진을 보다 '뭐 이렇게 크게 보여주는 거야' 하며 한숨을 깊게 내쉰다. 덜컥 B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다.

B는 제단 위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제대로 된 증명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는지 언젠가 휴대폰으로 찍어둔 셀카처럼 보였다. 사진 속에서도 아픔을 참고 있는 것만 같아 더는 바라볼 자신이 없어 얼른 국화 한 송이를 제단 위에 올렸다. 우두커니 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뒤 눈을 떠 초췌한 모습의 남편과 제 나이답지 않게 의젓한 딸아이와 인사를 나눴다.  “A의 선배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뒤늦게 나를 본 A가 달려와 손을 마주 잡는다. 그 손을 잡고 따지듯이 물었다. “괜찮다고 했잖아. 괜찮다고 했는데 이러는 경우가 어디 있어?” 울먹이는 내 표정 때문인지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엄마 때문에 울지 않을 거예요.”하고 다짐하는 A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그게 무슨 마음인지 잘 알기에…. B는 30대 초 유방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이어오다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다 몇 년 뒤 재발했고 또 전이되었고,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한창 예쁘고 멋졌을 30대 B는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웠다. A는 B와 동갑인 내게 조목조목 말하기 어려웠노라고 답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하고 말하는데 목이 매인다. A는 나를 보며 B가 생각났을 터이다. 비교든 원망이든 할 수도 있다. A의 말이, A의 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감출 도리가 없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눈부시게 화창한 하늘이 내겐 너무 무겁고 버거운 날이다. 곱디고운 나이에 고인이 된 B가, 정신없는 장례를 마치고 제 언니의 죽음을 현실에서 맞닥트려야 할 A가 유난히 마음에 맴맴 돈다. 며칠이 지나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잊으려 술을 마셔보지만, 마실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자기 홍보하는 성형외과 의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