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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Sep 29. 2020

뒤늦게 찾은 나의 소울 푸드

장마 시작 전 서둘러 결혼 했으니, 결혼한 지 백일 남짓 지났을즈음 추석을 맞았다.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치고 과일 준비를 하는 등 명절을 준비하는 부엌 풍경은 비슷하지만 공간을 매우는 익숙한 기름 냄새는 불편하다. 낯선 환경에서 맞는 첫 명절이라 그런지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 만만한 분위기로 가고 싶었다. 고속도로 정체가 있을지언정, 그래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하더라도 그게 더 나을 거 같았다.


다른 음식은 하루 전 준비를 마쳤는데, 제사 탕국만은 예외였다. 시어머니는 추석날 아침에 끓이면 된다고 자신이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수년간 먹은 탕국은 산해진미 가득한 맛이다. 육류, 해산물, 무가 냄비에서 춤을 쳤다. 한 그릇 안에 육해공이 넘쳐났다. 그 깊은 맛은 담백하고 시원하며 개운하기까지하다. 탕국에 밥 몇 공기는 거뜬히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재료도 재료이지만, 탕국을 끓이는 이의 손맛과 정성도 한 몫한다. 여튼 친정인 경상도 제사상에서 만날 수 있는 탕국은 일품이다. 나는 당연히 내가 먹던 탕국을 추석 아침 먹을 수 있을거라는 부푼 꿈을 안고 잠에 들었다.


추석날 아침 시댁 부엌에서 끓고 있는 탕국은 이곳이 내 집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우쳤다. 나는 결혼을 했고, 그곳은 친정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시어머니식 탕국은 무와 두부 닭 한 마리가 전부였다. 쉽게 말하면 닭으로 국물을 내고 무와 두부가 건더기처럼 있는 셈. 삶은 닭은 제사상에 올린 뒤 제사가 끝나면 갈기갈기 찢어 그 국물에 넣는다. 그리고 한 두번 쯤 휘이 휘이 젓는다. 그러면 그게 탕국이 되는 거다. 닭은 두 어번 삶아 국물에 기름기를 제거했다지만, 입술에 남은 끈적거림은 숨길 수 없다. 친정에서 먹던 탕국 한 대접이 간절히 떠올랐다. 아침상을 치우기가 겁나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큰집 언니한텐 탕국 좀 싸달라고 그래!”하고.

한 살 더 먹는 새해가 되었다. 새해 첫 명절, 떡국을 먹는 기대는 진작에 깨졌다. 허여멀건한 떡국이 뭐 별건가 싶지만, 새해 아침 먹는 맛은 또 다르다. 마치 한 해를 시작하는 의식 같은 음식이라고 할까! 그게 수십년 넘게 몸으로 체득한 결과였다. 하지만 결혼 한 나는 새 의식을 치뤄야한다. 그건 바로 만두빚기! 시아버지 고향은 함흥 어디께쯤이다(몇 번이나 들어도 까먹는다. 관심이 없어 그럴테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시댁은 새해 첫 날 만둣국을 먹는다. 만두소에 만두피까지 직접 집에서 준비한다(만두소는 그렇다쳐도 만두피는 슈퍼에서 사도 될텐데). 난생처음 빚는 만두가 성에 차지 않는다. 동그랗게 빚는 것도, 세모 모양 또는 반달 모양으로 빚는 것도. 떡국을 먹고 싶은데 못먹어 심술이 나서 그런가 예쁘게 빚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빚는 속도도 모양도 시어머니가 것과 너무 차이가 났다. 만두를 빚은지도 벌써 십년이 흘렀다. 사실 명절 뿐만 아니라 수시로 해먹는데, 나의 만두 빚기 실력은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다. 만두 빚으면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는 건 다른 사람 이야기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빚으면서도 한 숨만 푹푹 쉰다. 그렇게 만두를 빚고, 만둣국을 먹으면 시어머니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성혜가 이제 우리집 식구 다 됐어. 만둣국도 잘 먹고.”

나는 원래 뭐든 잘 먹는 식성을 가진 인간이다. ‘장 씨’ 집안 식구라서 그런게 아니다. 왜 만두를 잘 먹는 이유가 이 집 식구가 되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어서도 시댁 귀신으로 죽으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옛 말이 된 표현이지만. 어머니가 만두를 빚고, 또 먹을때마다 하는 멘트 역시 시대 착오적이라 생각되어 자꾸  대꾸하고 싶어진다. ‘어머니, 그게 아니라고요!’

 

명절이 되면 그리운 건 탕국과 떡국 같은 음식이 아니라 익숙하고 정겨운 친정 식구들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기애애함일지도 모른다. 명절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보니 나의 소울 푸드를 찾은 기분이다. 그래, 탕국과 떡국은 내 소울 푸드였다.


<본 원고는 2W매거진에 기고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매달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여성 에세이 웹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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