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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Sep 05. 2020

월급이 다가 아니었다.

4대 보험이 주는 안정적인 시스템 조직에서 뛰쳐나와 프리랜서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솔직히 생계에 대한 막막함은 없었다. 남편의 수입도 있었고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감사하게 업무를 맡았던 한 기업 클라이언트가 담당자 바뀌는 걸 원치 않아 하던 일 하나는 프리랜서로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월간‧격월간‧계간 등의 주기로 발행되는 사보 특성상 마음먹고 깽판 치지 않으면 - 예를 들어 마감 시한을 지키지 않거나, 콘텐츠 기획이 별로거나 등 - 일 년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클라이언트 마음에 들게 일을 쏙쏙 한다면 몇 년은 맡아서 할 수 있다. 진행하던 사보 하나만 믿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 프리랜서 에디터를 구하는 몇몇 곳에 이력서를 보냈고, 며칠 뒤 면접을 봤다. 그동안은 충무로로 출근했지만, 프리랜서는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지역 따윈 큰 문제가 아니다. 면접을 본 곳은 강남구 신사동. 며칠 뒤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게 벌써 7~8년 전이다. 회사 다닐 때 담당했던 몇몇 프로젝트 담당자는 프리랜서가 된 나를 찾아 일을 부탁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기도 했다(공공기관과 계약할 때 프리랜서 신분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다. 사업자가 있어야 한다).


업무량이 차고 넘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은 끊임없었다. 다행히 프리랜서를 하면서도 월급이 주는 고마움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일 년에 서너 번 공공기관 업무를 할 때면 인쇄소나 디자인 업체에 돈을 입금해주는 1인 기업 사장님 놀이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예산 삭감 시 대부분 홍보 관련 예산부터 줄이는데 사보가 바로 홍보 매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상은 적중했다.


온라인 매체가 증가하면서 종이 매체 비중은 줄어들었다. 월간은 격월간으로, 격월간은 계간으로, 계간은 온라인 사보로 그 형태가 변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기관의 일도 웹진 형태였다. 월간이어서 다행이었지만 일언반구도 없이 폐간됐다. 일은 늘 있다가도 사라지기 마련이니깐 아쉬워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사보 일이 줄었다는 게 소문이 났는지 사보를 대신할 매체 업무 의뢰가 오기도 했고 여행 쪽 일도 하면서 월급은 좀 줄어들었을지언정 그래도 즐거움과 성취감은 누릴 수 있었다. 그게 감사한 일인지 모르진 않았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그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2020년 2월 가이드북 개정판 취재를 위해 출장을 떠났다. 3월 코로나로 세계가 뒤숭숭했지만, 개정판 마감을 앞둔 탓에 며칠은 바빴다. 마감 후에는 4월이면 십 년째 고정으로 진행하는 공공기관 단행본이 있으니 몸도 마음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는 그 단행본마저 휩쓸어 버렸다. 3월과 4월, 일하고 싶은 의지와 상관없이 코로나가 모든 걸 멈추게 했다. 일조차 멈췄으니 통장 입금 알림도 깜깜무소식이다. 곰곰이 그동안 미수가 없었나 생각도 해봤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없다. 일이 갑자기 없어지니 불안했다. 일을 통한 성취감도 없어지니 우울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하고 생각하지만, 상실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떤 일을 끝내야지!' 하는 다짐에서 '오늘은 뭐하지?' 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기분이 엉망이 되었고 무력함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운동하며 다잡아보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다. '노동을 통한 대가가 이리 큰 의미였나?' '여자에게 일이 이런 존재였나?' '평생을 일하고 퇴직하면 이런 기분일까? 등등 처음 느껴보는 이 생소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매일 밤 감정은 밑바닥을 쳤다. 잠자리에 누워서 한숨만 푹푹 쉬어댔다.

자의적 선택에 의해 일을 쉬는 게 아니라 타의적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머릿속을 헤집는 감정이 한둘이 아니다. 여성에게 '일'이 가지는 의미, '직업'을 통한 성취감 등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존재였다. '내가 지금 이런 데 육아로 경력 단절인 친구들은 어떨까?' 생각해보며 그들 심정을 잠시나마 공감하게 되었다.


 나를 가장 근거리에서 지켜본 남편은 “5월이 되니 얼굴에 생기도 돌고 감정이 나아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코로나19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코로나19가 불러온 변화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멈췄던 것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공기관, 기업 할 것 없이 업무 재개가 시작된 모양이다.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여성에게 돈은 단지 재화가 아니라 그 이상의 뜻을 지닌 게 아닐까?' 하고 절실히 생각하게 된 코로나19 시대. 돈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했고, 일의 가치가 돈과 비등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 2020년 봄이 지났다. 가을을 앞둔 요즘 나는 다시 일로 행복해질 준비 중이다. 프리랜서로 신분을 전환하면서 처음으로 한 월급 고민은 단순히 '돈'이 아닌 '일이 주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후일담.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생활지원금도 받았지만, 프리랜서를 위한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이 더 반가운 건 왜일까!


<본 원고는 2W매거진에 기고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매달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여성 에세이 웹진입니다. 2W매거진에 필진으로 참여하세요. 하나의 주제 글쓰기로 함께 글쓰는 재미, 피드백을 나누며 공감하고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글을 기고할 수도 있고요. 새로운 소식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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