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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Nov 08. 2020

나는 때때로 꽃집에 간다

‘외톨이야 외톨이야~’ 씨엔블루의 노래 〈외톨이야〉는 한때 친구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과 같은 곡이었다. ‘외톨이’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매인 데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홀몸’ 혹은 ‘다른 짝이 없이 홀로만 있는 사물’은 아니었지만, 나는 늘 혼자였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혼자 있었다. ‘외톨이’는 결혼 후에 붙여진 별명이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주말이나 달력의 빨간 날은 공식적으로 혼자 있는 날이 된다. 일 년 열두 달 중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열 한 달은 혼자일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나홀로족’이 유행하기 전부터 혼자 밥 먹기는 기본이고 영화 보기, 카페 가기, 운동하기, 여행하기, 목욕탕 가기 등등 혼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가끔 나홀로족의 끝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집에 있으나 남편 출장지를 따라나서나 혼자인 건 매한가지다. 여행 간다는 기분으로 출장길에 따라나서 보지만, 새벽녘 촬영장으로 떠나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 홀로 산책에 나선다. 사위에 어둠 채 사라지기 전이라 그런지 모래사장은 파도 소리로 가득하다. 철썩. 푸르르. 철썩 쓰으. 여행자의 들뜬 마음이 물결에 채 닿기 전이라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우린 CCTV 천국에 살고 있지 아니한가. 하여튼 삼척 바다를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난 종일 혼자였다. 태백에 사는 친구가 잠깐 만나러 와준 두 시간을 제외하면 나 홀로 산책하고, 밥 먹고, 사우나에 다녀왔다. 이런 내게 ‘혼자 보내는 게 외롭지 않냐?’라고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원래 인간이란 게 외로운 동물 아닌가!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아니한가? 외로운 건 혼자 있으나 둘이 있으나 혹은 셋이 있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무슨 청승맞은 짓이 냐?’ 말하는 이들도 있다. 스스로 처량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삼척 갈남항의 한 카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결국 이 시간을 활용하다 보니 혼자서 여러 가지를 하는 것뿐이지 사회성이 결여되었거나 인간관계가 불안정한 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 시간을 좋아한 건 아니지만, 십몇 년째 하다 보니 즐기게 되었다. 나 홀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집중’이란 걸 하게 한다. 산책할 때 호흡에 집중하고 영화 볼 때 감정에 충실한다. 등산 할 때 속도에 집중하고 여행할 때 원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다. 또한 혼자인 모든 순간에는 오롯이 나 자신을, 나 자신만 믿게 되기도 하다. 혼자여서 외롭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은 끝도 없다. 혼자인 걸 누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도 적당히 즐길 수 있게 된다. 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혼자서 즐기다가 누군가 함께하면 함께 여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외로워 봐야 행복의 참맛을 알 수 있고, 행복해 봐야 외로움이 주는 고독도 느낄 수 있다.

베네치아 출장 때 숙소에 꽃을 사뒀다.

나 혼자일 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하나쯤을 더 터득하곤 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혼자 해외 출장을 가다 보면 숙소에 나 말고 생명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 나는 꽃집에 간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같은 숙소에 꽃병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꽃 한 송이 혹은 한 다발쯤 사서 컵에 아무렇지 않게 꽂아 둔다. 그곳에 나는 혼자이지만, 왠지 모르게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그러다 꽃에 말을 건다. 나는 출장지에서 덜 외로울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배웠고, 출장이 잦아든 요즘에도 때때로 꽃집에 간다.



<본 원고는 2W매거진에 기고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매달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여성 에세이 웹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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