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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Dec 08. 2020

코로나가 준 선물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했고 코로나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 해이다. 코로나가 시작할 즘 해외 출장을 떠났고 신천지로 코로나가 극에 달하던 2월 말 출장을 끝내고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엄청 오래된 일인 듯싶지만, 막상 계산해보면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2018년 출간된 후 잘 팔리던 여행 가이드북 판매도 멈췄다. 출간 예정이던 새로운 가이드북은 언제 다시 작업할지 깜깜무소식이다. 업무에 지장이 생겼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우울한 기분에 어찌할 바 몰랐다.


그래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해외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나서게 되고 몇몇 여행작가와 함께 여행을 추억해보는 두 권의 에세이를 냈고 전자출판과 독립출판도 했다. 코로나와 상생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업무는 하나둘 재개되었고 기분 전환을 위해 뭐든 하려 애썼다. 일은 좀 줄어들었지만 삶은 더 풍부해졌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남편과 걷는 시간, 친구와 여행, 독서량, 산책의 횟수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코로나가 처음 전파될 때 꽤 당황스러웠지만 현재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조금 더 유해졌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코로나가 많은 걸 빼앗아갔다고 생각했거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마스크와 함께 하는 날이 길어지다 보니 코로나로 얻은 것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세계 일주를 계획했던 친구가 예정대로 떠났다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겠지만, 내수경제를 살린 내 친구는 자동차를 샀고, 나는 친구의 도로주행을 도맡았다. 우리는 함께 멀리 내달렸다. 함께한 시간도 추억도 진해졌다. 먼 나라, 남의 동네만 아름다운 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일산이 가진 진짜 매력을 몇 가지 더 느끼게 되었다. 걷고 또 걸으면서 일산은 참 잘 정리된 계획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더 실감했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 그 색의 변화가 마음을 흠뻑 젖게 했고 내가 사는 공간에 더 많은 애정을 쏟게 되었다.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주로 먹은 덕분에 가스요금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올랐지만, 냉장고를 털어 할 수 있는 요리(라고 하긴 그렇지만)가 몇 개쯤 늘 었다. 친구들과 2W매거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면서 더 많은 여자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어떻게라도 글쓰기를 놓치지 않았고 쌓이는 원고는 늘어나고 있다. 아주 소소하고 지극히 평범한 것 투성인 일상이지만, 이런 일상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으로도 좋다. 두 손 두 발 들고 맞이한 감염병 앞에 많은 제약이 생겼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일상을 되찾았고 조금 변화된 모습이지만, 이런 것이 또 당연하듯 살아가고 있다. 분명한 건 나의 2020년도 당신의 2020년도 그동안 당연하듯 누렸던 몇 가지 사실에 감사하다고 느낀 한 해일 것이다.

가을날 일산 호수공원의 단풍

우리는 꽃이 피고 바람이 일렁이고 단풍잎 물들고 눈이 흩날린다는 시간의 이치를 잘 안다. 너무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당연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곁에 머무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코로나 덕에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40대를 출발하며 경험한 이런 시간이 삶을 대하는 또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역시 고마울 따름이다.


<본 원고는 2W매거진에 기고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매달 전자책으로 발행되는 여성 에세이 웹진입니다. 2W매거진에 필진으로 참여하세요. 하나의 주제 글쓰기로 함께 글쓰는 재미, 피드백을 나누며 공감하고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글을 기고할 수도 있고요. 새로운 소식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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