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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Jan 05. 2021

침상에 나이가 적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눈으로 확인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올해 내가 몇 살인지 알고 살 뿐, 굳이 숫자로 쓸 일도 그렇다고 누가 물어보는 경우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를 확인할 기회가 있는데 바로 병원, 그리고 약국 봉투이다. 병원 진료 차트(혹은 모니터 속)와 약국 봉투에는 나이가 로마자로 또박또박 인쇄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내 나이를 굳이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뭐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말이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서류 곳곳에 내 나이가 선명하게 적혔다. ‘박성★ 39’라고. 입원실 앞에도, 침상에도, 손목 인식표에도! 그뿐인가. 간호사가 올 때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정확하게 인쇄된 건 내 나이뿐만이 아니다. 병실 내 다른 환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건너 침상 환자의 신상을 알게 된다. 


일찍 입원한 덕에 5인실 침상 중 가장 좋은 창가 앞을 선점했다. 몇 분 뒤 입원한 그녀 역시 내 침상 앞 남은 창가 자리에 짐을 풀었다. 그녀 침상에는 4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서른아홉이나 마흔이나(학교를 일찍 들어간 탓에 내 친구들은 다 마흔이다). 그날 밤 입원 환자는 나와 그녀 단둘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침상에 쓰인 39, 40 별반 다를 것 없는 그 숫자를 계기로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가 비슷한 시간, 다른 의사에게 동일한 수술 방법으로 몸에 혹 한두 개쯤 제거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은 시간에 식사하고, 링거 맞고, 관장을 했다. 5분 차이로 수술실에 들어갔고, 병실로 돌아온 시간도 엇비슷했다. 이후 회복 과정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마는 그녀 보호자였던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보호자인 남편을 본 후 비교가 시작되었다. “결혼해 남편이 간호해주면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관장약 먹을 땐 “저이는 잘 마시는데 너는 왜 못 마시냐?” 회복할 땐 “우리 딸이 참 잘 참는구나!”(내가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 때까지 ‘배 아파’를 읊조리며 왔는데 자기 딸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려온 걸 보고). 심지어 무통 주사까지 비교의 대상이었다. 무통 주사는 개인 회복력과 통증의 강도마다 투약량과 속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우리 딸은 저이보다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 아니냐?”라고 간호사에게 몇 번이나 묻곤 했다(수술 다음 날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는 회복실에서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투약량이 많았던 것이라고 한다). 

비교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가느다랗고 뾰족한 바늘로 들어오는 몇 가지 약으로 겨우 기운 차리고 있는 내겐 어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꾸할 기력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호구 조사로 날 당황하게 했지만, 그건 뭐 애교라고 친다(왜 기혼자는 무조건 아이가 있어야 하는 거지?). 무엇보다 퇴원과 동시에 전혀 모르는 사람일 텐데 싶어 무심코 넘겼다. 


‘입원실 침상에 나이가 적히지 않았다면 이런 비교가 시작되었을까?’하고 잠시 고민해본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 역할과 의미보다 나이에 따른 ‘스스로’ 역할과 목표가 더 중요해지면 좋겠다. 숫자로 드러나는 나이로만 나를 그리고 당신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두 평가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글 쓰는 여성들의 독립 이북 매거진 2W매거진 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W매거진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투고할 수 있는 매거진입니다. 매거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미가 출판사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2yjyj) 또는 2W매거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www.instagram.com/2w.zine/)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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