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우리 제주 책 써볼까?” by 박성혜

코로나가 바꾼 여행 작가의 시선

by 셩혜

언젠가 남편 따라 숲에 간 적이 있다. SNS를 뒤져 찾아내니 바야흐로 2010년. 십 년도 전이다. 남편 출장지인 제주에서 며칠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광경에 매일이 놀람과 신비로움의 연속이었다. 차를 타고 들어간 숲은(관공서에 사전 허가를 받음)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밖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정취를 자아냈다. 제주에 바다 따라, 마을 따라 걷는 올레길만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려준 것이다. 그곳은 인적도 드물었고 깊숙한 숲에 버섯 농장과 양봉장이 있는가 하면 얼마나 오래 자랐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키의 나무와 식물이 사방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동안 숲을, 또 산을 다녀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내가 알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아, 이런 곳이 한국에도 있구나!’ 하는 것이 남편의 첫 반응일 정도로 육지에서 본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 우릴 반겼다. 출장만 아니라면 당장 내려서 걸어보고 싶었다. 망망대해가 있는 것처럼 숲도 그랬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이 없을 것 같은데 어김없이 길은 나타났고, ‘이 길이 맞아?’하면서 가면 또 길이 있었다. 그렇게 처음 본 제주 숲의 첫인상은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잊힐 줄 몰랐다.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움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거리며 나를 따라다녔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는 터라 제주에 가면 올레길을 즐겨 찾았지만, 그 이후로는 올레길 대신 숲을 찾게 되었다. 일정에 꼭 한두 곳의 숲을 넣었고 몇 시간씩 걸었다. 이듬해 친구와 제주 여행을 떠났고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 숲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은 첫 숲이 사려니숲이다. 삼삼오오 숲을 찾은 사람들은 ‘좋다.’라며 탄성을 지르다가 어느 순간 점점 말문을 닫기 시작했다. 나도 친구도 예외일 순 없다. 우리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발자국 소리, 새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열었다. 귓가에 울리는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차츰 안정시켰다. 마치 좀 전에 한참 들뜬 마음을 잡아주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침묵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가끔 그 침묵을 깨는 말이라곤 그저 ‘좋다’가 전부였지만, 그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다. 동행이 친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곳에선 침묵이 좋다는 걸 우린 암묵적으로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동행이 바뀔 때마다 같은 숲을 반복해간 적도 있지만, 그래도 싫지 않았다.

지난해 친구이자 여행 작가 동료이며 이웃사촌인 아미 부부와 함께 제주에 다녀왔다. 그때도 이미 몇 번이나 다녀온 두 곳의 숲을 함께 찾았다. 아미는 곧잘 걷는 걸 알고 있던 터라 숲 걷기 제안에 망설임이 없었으나 아미 신랑은.... 성향이 어떤지 사실 잘 몰랐다. 여행 후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잘 따라 왔고 식물, 곤충, 벌레에 대한 지식이 있어 내가 얕은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도왔다. 우린 걸으며 쉬며 일정 중 두 개의 숲을 다녀왔다. 숲을 찾았을 때 인적이 드물어 마스크를 살짝 내리기도 했다. 예약해야 하는 숲의 경우 일부러 이른 시간에 찾았는데 내 예상과 달리 아침 일찍 그 숲은 우리 셋의 차지였고 마스크를 내리고 걸었다. 그러던 중 ‘숲이야말로 언택트 여행 최적의 장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 숲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니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이런 좋은 곳에 사람들은 안 찾고 뭐 하는 거람! SNS 업로드용 사진 찍기 숲만큼 좋은 곳이 없는데 왜 맛집이나 카페만 가는 거지... 하고. 제주의 진면목을 놓치는 것 같아 내가 다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와 아미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부터 내렸다 멈췄다 하는 비는 커피 향마저 더 진하게 했다. 그러다 이렇게만 있을 수 없겠다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코로나와 함께 나도 아미도 다 마무리한 여행 책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우리 이대로 두 손을 놓고 보낼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제주 책 써볼까?” 아미는 바다를 좋아하고 나는 숲을 좋아하니 제주 콘텐츠로는 최적이지 아니한가!(이미 정보는 넘치겠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출판사 대표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에 무슨 여행인가 싶기도 해서 아주 조심스러웠다. “아미 작가 ‘제주 바다’, 저 ‘제주 숲’ 써보면 어떨까하고...요.”라고. 그게 2020년 8월 6일이다.

코로나로 해외에 갈 수 없으니 국내의 아름다움에 시선이 가고 도취되는 건 자연스러운 노릇 아닌가. 숲이 좋다는 걸 알게 해준 제주의 숲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관심이 뜨겁게 타올랐다. 여행 작가로 코시국을 살아가는 내가,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이 내가 살아가는 데 거쳐야 할 마디라면, 마다하지 않고 그 마디를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숲속 나무들이 마디마디 단단히 쌓여 굳건하게 자라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제주 숲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무더운 여름을 나실 수 있게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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