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걷기 예찬
‘올레길이 얼마나 많은데 이를 두고 왜 숲으로 들어가냐?’라고 하는 사람, ‘숲은 거기서 거기 아냐? 다 같은 숲처럼 보이는데 뭐가 다른가?’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질문이 어쨌든 간에 결론은 ‘왜 숲이야?’라는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왜 숲인가’에 대해서는 앞서 프롤로그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따라다녔다. 기억이란 참 강한 힘을 가진 듯 그 기억이 나를 움직인 셈이다. 기억이 포장되었다 한들 달라질 건 없다. ‘걷는 것’에 대해 말하면 원래 좋아했다. 피트니스 헬스 머신 위에서 걷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땅 밟고 걷는 걸,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만나는 세상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 두 개가 만난 것뿐이다. 자고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가끔은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하지만)
처음 가는 숲은 처음이라 반갑고 신기했고 몇 번이나 다녀온 숲은 익숙함이 만드는 편안함도, 익숙함에서 가려져 놓친 것을 찾는 발견의 기쁨도 좋았다. 혼자 숲을 걸으면 말이 없어지게 되는데 그래도 외롭지 않다. 이름 모를 새들이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홀로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도록 앞에서 재롱도 부려 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비와 벌떼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일도 흥미롭다.
숲을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도 단순해지고 찾지 못한 답도 얻게 된다.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식물과 나무들의 공생을 보며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열매가 달린 나무를 볼 때면 사소한 것에도 감사를 느끼게 된다. 흙, 화산 송이 더미를 밟으며 걷는 걸음은 자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다. 거칠고 투박한 흙, 돌, 자갈이 신발 밑창으로 스며드는 날것의 기운은 내가 자연에 들어와 있음을 더욱더 체감하게 한다. 걸을 때마다 날리는 먼지에서는 풋풋한 자연의 향이 스멀스멀 퍼진다. 아스팔트 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드라움은 덤이라고 할까. 인적이 드문 숲은(가끔 무섭긴 하지만) 마치 내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그럴 땐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이 좋은 것이 모두 내 것인 것 같아서 말이다. 숲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걷고 또 걸어 발에 물집이 잡히고, 또 발톱이 빠질 것 같아도 그런 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잠깐 아프면 될 뿐).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덕분에 몸과 마음이 소독되는 기분은 말해 뭐해!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와 함께 움직이며 공명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흐뭇하다. 이러니 숲을 걸으며 흘리는 땀의 가치가 내게 얼마나 큰 것이겠는가! 온전히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감정에 솔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숲길 걷기는 내게 최고의 힐링 시간이자 장소이다.
숲에 가면 그렇게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제주의 드넓은 숲은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었고, 그런 자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품을 수 있었다.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무더운 여름을 나실 수 있게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