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기, 숲
선흘리 동백동산에서 만났던 분이 그랬다. 복장만 보면 숲에 온 목적을 알 수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숲 걷기를 목표로 왔다면 복장이야 말할 것 없이 운동화 또는 트레킹화에 배낭,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면 편한 복장에 샌들 정도. 그도 아니면 고운 색 원피스를 입고 오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인생 샷 하나쯤 건지러 왔거나 제주 숲이 어떤 환경인지 모르고 왔을 터이다(개인적으로 원피스보다 더하다고 생각한 경우는 한라산에 탐스 슬립온을 신고 온 여성분이다). 모두 숲을 찾는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그분 말처럼 복장만으로도 목적과 그 너머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동백동산에서 만난 분이랑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혼자서 숲에 가다 보면 종종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둘 혹은 셋, 혹은 그 이상이 함께 한다. 인적이 드문 숲 경우 위험할 수 있으니 동행이 꼭 있어야 한다고 안내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위험해 처한 적은 없다. 멧돼지 출몰 지역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제주에 들개가 가축을 이어 사람까지 공격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겁을 먹었던 적은 있지만. 그럴 확률이야 낮겠지만 ‘진짜 멧돼지를 만나면 어떡해야 하지?’ ‘들개한테 물리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 그래서 혼자 숲을 걷다 누군가 만나게 되면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는 범위 내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며 걸음의 속도를 맞춰 가곤 한다. 그렇게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당황하는 대신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라고.
어린 시절 아빠는 줄곧 산에 갈 때마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산을 오르다 내리다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 ‘우리 아빠 진짜 아는 사람 많구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인사한 사람 중 아는 사람이라곤 10%도 되지 않았단다. 근데 왜 그렇게 인사를 했던 걸까. 그때 기억 때문인지 숲을 걸으면서 생면부지인 이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야생 꽃, 이름 모를 나무에게도 나지막하게 반가움을 표하는데 사람이라고 못할까. 숲을 이루고 있는 생명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걸 인사로 대신한다면 숲을 걷는 사람에게 인사는 왜 하게 되는 걸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는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주 수많은 장소 중 이 숲에서 이 시간에 만나게 되는 것도 반가운 일 아닌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게 되면 작은 정보도 귀동냥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동백동산에서 만난 중년 커플에게 숨겨진 숲 정보를 얻었고, 마흐니숲길에서 인사 나눈 가족은 떡, 감자, 과일 등 콩 반쪽도 나눠주는 한국인의 마음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이뿐인가, 20년간 제주 숲을 거닐고 있는 팔순의 노장은 멧돼지 출몰 흔적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줬다.
히말라야에서 트레킹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나마스테(NAMASTE)’라고 인사를 한단다.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드립니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서로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숲을 거닐며 만나는 사람과 특별한 목적이 있어 인사를 나누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향한 존중과 즐거운 걷기 문화는 이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거 아닐까(인사해도 대꾸 없이 지나치는 이들도 어쩌다 있다).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며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숲에서의 인사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숲에 가면 땅에서 피어오르는 꽃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름드리나무에게, 얼굴은 빼꼼 숨긴 채 노래만 짖어대는 새에게, 먹이를 먹다 눈이 마주친 노루에게 ‘안녕’하고 인사 건네 보자. 그렇게 입을 조금씩 풀다보면 숲길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절로 나올지 모른다. 머-쓱 하다고? 그건 한순간이다.
‘인사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한다.’ ‘인사 잘하고 뺨 맞는 법은 없다’등 인사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는 우리 속담은 많다. 세상에서 제일 쉽고도 어려운 일이 인사라고도 한다. 숲에서 계절과 자연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과도 인사 나눠보자. 숲을 걷는 그 걸음이 조금 더 풍성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숲을 선물해 준 제주에게도 안녕!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산들바람과 함께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