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나 홀로 바다를 누리는 호사
제주 숙소를 잡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해변까지 걸어갈 수 있느냐’다. 이왕이면 바다 뷰가 좋긴 하겠지만 그건 2차적인 문제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후 가볍게 숙소로 돌아와 바로 씻고 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숙소는 김녕 해변에서 거의 1~2분 거리였기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바다가 숙소 가까이 있으면 좋은 점은 또 있다. 내가 ‘바다랑 독대하기’라 명명한 놀이인데,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도 꼭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제주 바다를 온전히 내 것처럼 누리는 가슴 뻐근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놀이의 핵심은 ‘숙소 밖을 나갈 때 절대 씻거나 꾸미지 말 것’, 그리고 ‘혼자 할 것’.
나 홀로 바다를 누리는 최고의 방법
우선 여명이 터오는 이른 아침 6시 반~7시 반 사이에 일어난다.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 그대로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거울도 보지 말고, 씻어서도 안 된다(찬물을 얼굴에 끼얹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나서 아무렇게나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이 부끄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대충 눈곱만 떼고, 커피 한 잔 타서 그대로 바닷가를 향해 걷는다. 이때 커피는 텀블러나 종이컵보다 머그잔에 타기를 권한다. 세라믹이나 유리컵 재질이면 더 좋다.
극성수기라면 모를까, 보통 제주 해변의 이른 아침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가끔 일하시는 도민 분들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물다. 마치 우리 집 마당을 걷듯이 무심하게 슬리퍼를 끌며 바닷가까지 걷는다. 산책하러 나온 게 아니므로 걷는 시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대충 아무 데나 걸터앉아 따뜻한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인다. 가능하면 여기가 우리 집 거실이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자. 그냥 방파제 한쪽 구석이나 모래사장 위에 철퍼덕 앉아버리는 거다. 머그컵을 바닥에 내려놓을 때 소리가 꽤 생경하다. 사실 모든 감각이 생경하다. 내 눈앞에 홀로 존재하는 바다와, 유난히도 크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때로는 신비로운 물안개와 습기를 머금은 아침 공기…….
그 풍경 속에서 나의 존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한낮의 해변과 새벽녘의 바다가 매우 다른 것처럼, 남에게 보이는 나와 진짜 나 자신 또한 매우 다르다. 보통은 사적인 공간 안에서만 무장해제되기에 그런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예외다. 이렇게 탁 트인 바다 앞에서 무장해제된 모습으로 가만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와 꽤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마치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바다와 일대일로 독대하는 기분도 든다. 긴 시간은 아니어도 좋다. 짧으면 10분, 가끔은 30분 정도 멍하니 바다 앞에서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간다. 잠에서 덜 깬 머리가 그때쯤엔 꽤 맑아져 있다.
정리해놓고 보니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기간이 짧고, 동행과 모든 일정을 같이 해야 하는 여행이라면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바다와 독대하는 시간은 제주 여행할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중 하나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서는 마스크 없이 야외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귀중해졌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혹시 사람들과 마주칠 때를 대비해서 주머니에 챙겨가긴 한다).
한낮의 해변은 늘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알록달록한 텐트와 파라솔들이 백사장을 가득 메웠고, 장난감을 갖고 와 모래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패들보드나 서핑을 즐기는 레저 이용객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까지 면면도 다양했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 북적이는 해변이 주는 활기는 분명히 매력적이었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 아직까지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고 소박한 해변의 매력이 돋보이는 계절이었다.
이번에 처음 방문한 하모해변은 그런 의미에서 보물 같은 곳이었다. 가파도 마라도 여객선 타는 곳 근처에 위치해 잠시 들러 구경하는 승선객들 외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눈부신 백사장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산책길과 다양한 녹조류 등 매력적인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지키는 사람도 없고 수영하는 사람이 딱 한 명이었다. 아늑한 바다 위를 가로질러 스노클링을 홀로 즐기더니 해변 한 구석에 비치 타월을 깔아놓고 한동안 선탠을 즐기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모습을 보며 왜 그리 부럽던지!
며칠 후, ‘나 홀로 아침 수영’에 도전장을 던졌다.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차에 물안경과 오리발까지 챙겨가지고는 금능해수욕장에 간 것이다. 금능해수욕장은 워낙 수심이 얕아 혼자 수영을 즐겨도 그리 위험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안전요원이 없는 곳에서 수영할 때는 반드시 동행과 함께 할 것을 권한다). 한낮엔 늘 붐비는 인기 해수욕장이지만 아침 7시에 수영하는 사람은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이 넓고 아름다운 바다를 나 혼자 누리는 호사라니! 수평선을 향해 한참 신나게 수영하다가 몸을 휙 뒤집어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 위에 누워 잠시 둥둥 떠 있었다. 이 하늘, 바다, 공기! 이렇게 멋진데, 이걸 다 공짜로 누릴 수 있다니.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다시 힘차게 헤엄쳐 돌아오는 길,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용역직원 분들이 보였다. 이 환상적인 바다를 언제까지 이렇게 공짜로 누릴 수 있을까. 아마도 얼마 안 남지 않았겠지. 울컥,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제주여행기, <제주는 숲과 바다>는 홍아미, 박성혜 작가가 교차로 주 1회 연재할 예정입니다. 답답한 일상 속에서 힘내실 수 있게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글과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