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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Aug 26. 2021

하와이만 열다섯 번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곳은 정말 나와 잘 맞아!’하고 생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며 ‘두 번 다시 오기 싫어.’라고 할 만큼 흥미가 없는 곳도 있다(이도 저도 아닌 곳도 있고). 많은 사람이 여행에 쏟는 마음이야 잘 알지만, 여행지가 내게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2013년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만난 한국인 중년 부부는 여행에서 생길 수 있는 인연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게 한 장본인이다. 전날 같은 기차, 같은 칸에 앞뒤로 나란히 앉아 프라하에 입성했고 이튿날 전 세계 여행객으로 넘쳐나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우연처럼 만났다. 그 인연은 생맥주 한 잔을 불렀고 우리 부부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게 바로 하와이다. 바다를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휴양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니 하와이에 눈길을 둘 리 만무했다. 중년 부부 중 남편이 말했다. “하와인 인생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 듯 우리 부부에게도 파문이 일었다.      

2014년 4월의 어느 날, 우리 부부가 탄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지나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착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년 부부의 이야기처럼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라 가보자.’ 딱 그 정도 마음이었고 여행 준비라곤 항공권, 렌터카, 호텔 및 약간의 액티비티 예약이 전부였다. 하와이에 간다고 하니 이미 다녀온 지인들은 이웃섬을 가야 한다면 성화였다. 이웃섬 중 마우이라는 곳에서 2박을 추가했는데, 웬걸! ‘이거 미친 스케줄 아니야?’ 싶었다. 진짜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다. 하와이 여행 후 샌프란시스코 바다에 가서 하와이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니 중년 부부가 추천한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셈이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서 한 일이라고 이듬해 하와이행 항공권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같은 여행지를 다시 가다니. 못 가본 섬도 많고(하와이에서 여행이 가능한 섬은 6곳이다) 여행한 섬도 절반조차 못 본 거 같았다. 구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좋았지만 아쉬움이 컸고, 그 마음을 아쉬움으로 남겨두기 싫었다. 세상에 가볼 곳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두 번을 가고 세 번을 가고 네 번을 갔다. 엄마와도 가고 시어머니와 단둘이서 가는 강행군도 했다. 하와이에서라면 누구랑 뭘 하든 다 좋을 것만 같았고 좋았다. 지인들이 “또 하와이 가?”라고 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일 만큼 하와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두 번째부터는 여행에 대한 준비를 이전보다 많이 했다. 찾고 또 찾았고 난생처음 하와이 여행 정모에 나가보기도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언젠가는 미국, 그것도 하와이에 이민 가겠다고 이민박람회에 가 상담도 받았다. 오아후를 비롯해 이웃섬(빅아일랜드, 마우이, 카우아이)을 모두 돌아본 후 ‘이 정도면 그만해도 후회 없겠다.’ 싶었을 때 아뿔싸! 여행 가이드북 제안이 들어왔다. 멈출 수가 없는 운명인가보다. 그다음 방문부터는 여행이 아닌 출장이었지만, 출장지가 무려 하와이라니! (웁스)      

여행이 출장으로 바뀌면 장소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일단 변한다. 즐기던 여행지가 일터가 되어 버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던 여행이 시간을 쪼개며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 내려도 좋은 여행지이지만, 비 내리면 시간을 버리게 되고 사진 촬영도 힘들다. 비 덕분에 잠시 쉬어갈 수는 있어도 한편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A4용지 400매에 가까운 분량의 원고를 다 쓴 후(내가 이만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원고를 들고 재차 확인하러 또 갔다. 가이드북 경우 연도가 바뀔 때마다 개정판 작업을 하는데 이때 또 간다. 카페나 레스토랑은 물론이거니와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여행할 수 없거나, 입장 방법이 변경되는 것을 일일이 체험해보고 반영한다. 물론 집에 앉아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가능하지만, 또 간다. 쓰고 남을 만큼 넉넉한 출장비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내 돈을 더 써야 하는데 그래도 갔다(2020년 1월에 다녀온 개정판 출장은 코로나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독자들이 확인하는 것도 아닌데, 눈으로 보고 발품을 팔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더 편한 일이었다. 몇 달 글 써서 번 돈은 출장 한 달이면 동났다. 글로 돈을 벌어 또 다른 글쓰기를 위해 투자한 셈이지만 투자한 만큼 벌었다고 장담하진 못한다. 그렇게 하와이에 점점 더 미쳐갔다. 궁금한 것이 용암 터지듯 솟아났고 언제 그만뒀는지 기억 안 나는 회화 공부를 다시 하고, 우리나라 역사 공부도 하지 않는 내가 남의 나라 역사를 공부할 지경이었다. 하와이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자존심이 상해 틈틈이 구글 지도를 펴 놓고 보고 또 보고 검색의 검색을 더 했다.      

그렇게 네 번에서 끝낼 뻔한 하와이 여행이 출장과 다시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열다섯 번이 되었다. 새로운 여행지를 만나더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의 열정을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반 출장쯤 되어 버리는 상황이 가끔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성격이 이 모양인걸. 한 번 꽂힌 걸 끝장내는 뜨거움이 발현되는 경우는 많진 않지만, 적어도 하와이는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타오르는 열정을 품을 수 있게 해준 곳이다. 그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세 권의 책을 볼 때 여행 작가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가끔 온라인 서점에서 댓글을 보면 그 열정을 알아주는 독자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럴 때는 마치 하와이에 부는 청명한 바람을 맞는 것 같다.      

산고만큼의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었지만, 다시 이런 열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못 찾으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한 번은 제대로 미쳐봤으니 후회도 미련도 없다.



이 글은 글 쓰는 여성들의 독립웹진 <2W 매거진> 14호 '내 생애 뜨거운 순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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