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셩혜 Dec 28. 2022

당신의 운세는 안녕한가?

연초 무료로 제공해주는 운세를 봤다. 두 군데 은행 앱에서 제공하는 운세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그 앱을 이용한 지인들은 두 곳 모두 정확하고 자세하다고 했다. 새해를 몇 시간 남겨두고였는지, 새해 첫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재미로 보는 마음으로 앱을 열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입력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한 해 운을 가뿐하게 읊어냈다. 총운을 비롯해 월별 운을 자세하게 제공했다. 점쳐준 운세는 좋지 않았다. 최악이다 싶을 정도였고 내가 이런 운세를 읽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별로였다. 좋은 말이거나 혹할만한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류로 문제가 생기고 관에 들락날락할 일이 생긴다는 게 주 요점이었다.

     

며칠뒤 친구 부부와 식사 자리에서 운세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본 운세에 대해 하소연했더니 친구 남편이 다시 한번 봐주겠다고 한다. 친구 남편이 사주 공부를 한 탓에 기본적인 것을 볼 줄 안다. 그는 뭔가 끄적이더니 왜 그런 풀이가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며 설명을 해줬다. 그가 본 내 운세도 모바일에서 알려준 것과 비슷하긴 했다.      


암튼 2022년 내 운세는 무료 앱에서 점쳐준 대로 흘러갔다. 정말 서류 하나가 문제가 되어 시끄러웠고, 온갖 서류가 증빙서류로 왔다 갔다 했다. 문제는 우리가 돈을 내주는 것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더러운 기분은 지울 수 없었고 사람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1차 계기가 되었다. 그 사람이 가족이라는 점은 뭐. 할 말을 잃게 할 뿐이다.      

그 일이 해결될 때쯤 기다렸다는 듯 또 일이 터졌다. 계약서에 버젓이 도장까지 찍어두고 아무런 이유 없이 공동 저자로부터 계약 종료를 요청받았다. 이 일은 혼자 당한 게 아니라 출판사 대표와 함께 당하다 보니 하소연할 곳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지만, 카톡 메시지 한 줄로 날아온 계약 종료 요청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자기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것 같으면 애초 우리는 계약서라는 서류를 왜 작성하는 것일까? 계약서가 그저 카톡 메시지 한 줄로 휴지 조각되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황당하게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상대의 행동을 되짚었다. 그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난 몇 달 동안 진행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이런저런 이유로 미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측근들은 손해배상 뭐 그런 것쯤 청구해도 되지 않냐고 했지만, 그런 게 또 무슨 소용인가.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몇 달 뒤 변호사를 만났다. 난생처음 변호사사무실에 갔다. 드라마에 나오는 크고 화려한 변호사사무실을 상상했지만, 그런 곳은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공간이다. 상담받고 여러 법률 자문을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출판사로 보낸 메일 내용까지 알게 되어 어이가 없었지만, 이 또한 넘긴다. 문제 삼으면 결국 관까지 들락날락하겠지만, 이쯤에서 멈췄다. 이제 내 인생에서 아웃시킬 사람이니 그런 사람에게 감정과 시간을 쏟는 건 낭비일 뿐이다.               


2022년 운세가 점쳐준 대로 일 년을 보냈다. 운세가 말하는 대로 일은 벌어졌지만, 무조건 나빴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을 처리하면서 나름 배운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2022년이 다 저문다. 2023년을 앞두고 나는 다시 무료 운세 앱을 열어볼 것인지 말지, 나도 궁금하다. 재미로 볼까 싶다가, 그만둘까도 싶고. 어쨌든 2022년이 가고 2023년이 온다. 2022년 당신의 운세는 안녕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김치처럼 잘 익은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