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의사 서연주
사보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인터뷰를 목적으로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본다. 일반 시민에서부터, 예술가, 연예인, 기관장, 대기업 회장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인물이 나의 녹음기 속을 거쳤다. 그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한 기관이 ‘장애’와 관련한 곳이다. 사보 기자 업무 전체 기간 중 8할은 장애 기관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애에 관한 생각도 넓어지고 배움도 깊어졌다. 장애인식개선을 하게 된 셈이라고 할까. 그렇게 만난 인물 중 취재 목적이 아닌 개인 글 주제로 쓴 사람은 없다. 딱, 업무 거기까지였던 거다. 하지만 지난 8월에 만난 그녀는 기억에 오래 맴돌아 개인 글 주제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운이 깊었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인 그녀는 업무로 바쁠 텐데 피드백이 빨랐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일해야 하는 사보 일정상 빠른 피드백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데, 메일을 전달한 지 두 시간 채 되지 않아 회신했다.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인터뷰 날짜도 재빨리 잡았다. 그녀가 근무 중인 병원이 서울 중심에 있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당차 보였고 윙크하는 것처럼 한쪽 눈을 깜박였다. 서른둘, 내과 전문의. 임상강사 2년 차를 보내는 중으로 얼마 전에는 장애인등록증도 발급받았다.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된 것. 낙마 사고로 중도 장애인이 되었다. 흔히 중도 장애를 겪게 되면 거치는 심리 변화가 있다. ‘충격- 분노-협상-비탄 – 수용’의 다섯 과정을 거친다.
장애인 생활 9개월째,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고 삶의 형태는 이전과 달라졌지만, 변화된 삶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변화된 삶에 동반된 고민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32년을 비장애인으로 살았는데 일 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장애인이 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과연 나라면?’하고 생각해 봤다.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일까, MZ세대라는 나이 특징일까. 그녀는 장애인이 되어 다시 의사 가운을 입었다. 낙마 사고 후 불과 4개월 만이다. 그녀 앞에 ‘장애’가 가져온 장벽은 없어 보였다. 물론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있을 테다.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보는 게 힘들어졌고 예전과 다른 진로 고민을 하게 되는 등 말이다. 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그 마음은 더 진하고 굳건해진 것처럼 보인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빨리 수용할 수 있었던 거죠?’라는 질문에 “저는 낙마 사고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해요. 알아보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바꿀 수 없는 과거 시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느니 변화된 상황에 적응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도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특히 수술 부위 감염으로 2차 수술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기도 했어요.”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는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이라니!
인터뷰 다녀와 원고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의 <평온을 비는 기도>로 마무리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원고와 디자인 작업까지 마친 후 파일을 공유했다. 그녀가 입원해서 사고와 실명 사실을 받아들이는 내내 엄마와 함께 읽고 되새김질한 기도문이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서연주 선생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멈추지 말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녀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도 긍정의 기운이 전달되기를 희망해 본다.
인터뷰이를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늘 꼭 한 가지는 배움이나 깨달음은 얻게 된다. 그녀 역시 나에게 한 가지의 깨달음을 던졌다.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변화에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쉽게 잊고 마는 것을,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터뷰 전문 의사에서 환자로, 환자에서 의사로 내과 전문의 서연주 | 디딤돌 가을호 (kodd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