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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Sep 05. 2023

인터뷰이에게 배우다

인터뷰어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의사 서연주

사보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인터뷰를 목적으로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본다. 일반 시민에서부터, 예술가, 연예인, 기관장, 대기업 회장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인물이 나의 녹음기 속을 거쳤다. 그중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한 기관이 ‘장애’와 관련한 곳이다. 사보 기자 업무 전체 기간 중 8할은 장애 기관 일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장애에 관한 생각도 넓어지고 배움도 깊어졌다. 장애인식개선을 하게 된 셈이라고 할까. 그렇게 만난 인물 중 취재 목적이 아닌 개인 글 주제로 쓴 사람은 없다. 딱, 업무 거기까지였던 거다. 하지만 지난 8월에 만난 그녀는 기억에 오래 맴돌아 개인 글 주제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여운이 깊었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인 그녀는 업무로 바쁠 텐데 피드백이 빨랐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일해야 하는 사보 일정상 빠른 피드백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데, 메일을 전달한 지 두 시간 채 되지 않아 회신했다.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인터뷰 날짜도 재빨리 잡았다. 그녀가 근무 중인 병원이 서울 중심에 있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당차 보였고 윙크하는 것처럼 한쪽 눈을 깜박였다. 서른둘, 내과 전문의. 임상강사 2년 차를 보내는 중으로 얼마 전에는 장애인등록증도 발급받았다.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된 것. 낙마 사고로 중도 장애인이 되었다. 흔히 중도 장애를 겪게 되면 거치는 심리 변화가 있다. ‘충격- 분노-협상-비탄 – 수용’의 다섯 과정을 거친다.     


장애인 생활 9개월째,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고 삶의 형태는 이전과 달라졌지만, 변화된 삶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변화된 삶에 동반된 고민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32년을 비장애인으로 살았는데 일 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장애인이 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과연 나라면?’하고 생각해 봤다.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일까, MZ세대라는 나이 특징일까. 그녀는 장애인이 되어 다시 의사 가운을 입었다. 낙마 사고 후 불과 4개월 만이다. 그녀 앞에 ‘장애’가 가져온 장벽은 없어 보였다. 물론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있을 테다.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보는 게 힘들어졌고 예전과 다른 진로 고민을 하게 되는 등 말이다. 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그 마음은 더 진하고 굳건해진 것처럼 보인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장애를 빨리 수용할 수 있었던 거죠?’라는 질문에 “저는 낙마 사고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해요. 알아보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바꿀 수 없는 과거 시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느니 변화된 상황에 적응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도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특히 수술 부위 감염으로 2차 수술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기도 했어요.”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는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이라니!     

인터뷰 다녀와 원고를 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의 <평온을 비는 기도>로 마무리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원고와 디자인 작업까지 마친 후 파일을 공유했다. 그녀가 입원해서 사고와 실명 사실을 받아들이는 내내 엄마와 함께 읽고 되새김질한 기도문이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뿌듯하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서연주 선생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멈추지 말고 굳건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녀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도 긍정의 기운이 전달되기를 희망해 본다.   

  

인터뷰이를 만나 이야기 나누다 보면 늘 꼭 한 가지는 배움이나 깨달음은 얻게 된다. 그녀 역시 나에게 한 가지의 깨달음을 던졌다.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변화에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쉽게 잊고 마는 것을,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터뷰 전문 의사에서 환자로, 환자에서 의사로 내과 전문의 서연주 | 디딤돌 가을호 (kod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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