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던 시절 ‘가정’이라는 교과목을 맡은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셨다. 요즘에는 없을법한 교과목인 듯하지만, 내가 고등학생 시절 그러니깐 1996년쯤 시간표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정’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배운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바느질, 임신과 출산, 음식 만들기 실습 같은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독 마르셨던 선생님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체구였는데, 기운이 어디서 그리 솟아나는지 늘 학생들을 보듬었다.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아니더라도 늘 어깨를 쓰다듬었고, 복도에서 인사를 하면 꼭 이름을 불러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팔짱도, 어깨동무도 자연스럽게 하는 소탈함도 있었다. 그 따뜻했던 스킨십은 선생님의 또 다른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다. 여학생 가득한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학교에 여선생님도 많았지만, ‘가정’ 선생님의 스킨십은 유독 남달랐다.
10여 년 전쯤이었던가. 선생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지만 세월이 무색하게 예전과 참 비슷했다. 그때 선생님 덕분에 모교에서 직업 강의를 했다. 그때 그 강의가 내 인생 통틀어 첫 번째 강의였고, 제일 떨렸던 강의였다고 기억한다. 이후로도 선생님은 졸업생을 불러서 학생들에게 취업이나 진로 강의를 준비하시곤 했다. 드라마 쪽 일을 하는 남편에게도 꼭 한 번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의 짐이다.
정년퇴임을 했다는 소식에 선생님께 전화를 넣었다. 그동안 연락을 잘 드리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 한가득 차올랐다. “선생님, 저 성혜예요. 잘 지내셨죠~”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전 같으면 가을 학기로 분주할 9월 초이지만 선생님 목소리에는 약간의 여운과 여유가 함께 배인 듯하다. 3분간의 통화가 그동안의 시간을 채워줄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곳을 지키고 있을 테니 언제든 오면 연락하라는 그 말씀이 마음을 참 든든하게 해준다. 너무 늦지 않게 찾아뵈어야지 하고 다짐한다. 다짐보다 중요한 건 실천일 텐데. 요즘 테니스에 푹 빠지셨다는 선생님을 위해 예쁜 테니스복 한 벌 마련해서 찾아뵈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셀프 약속을 해본다.
요즘 참 여러모로 교육계가 뒤숭숭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을 만큼 뉴스를 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교사들의 소식에 마음이 멈칫한다. 손안에 핸드폰을 잡고 뉴스를 훑어보다 혹시 또 ‘속보’라는 소식 아래 비슷한 뉴스가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서는 정도이다. 걱정은 다시 현실이 됐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탐라 발 소식이지만, 한순간에 뉴스 일면을 장식한다. 이 글을 쓰는 9월 4일은 ‘공교육 멈춤의 날’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더 이상의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활기에 넘치는 학교 소리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다시 그 소리가 널리 퍼지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