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부터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작가와 프리랜서 에디터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사람 만나는 걸 어렵게 생각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결이 맞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인연은 귀한 것이기에 적당한 관계를 지속하는 편이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는.
‘결이 맞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일 년 전 내가 배운 교훈이다. 일 년 전 내게 교훈을 준 A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가르침을 줬다가 ‘비슷한 성향이 아니면 한계가 있구나’에서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구나’로 정리하게 해준 장본인이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사람 좋아하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선을 긋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여름, 한 달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중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B가 연락해 왔다. 여행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현지인이었다. 출장 중 두 번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과도한 친절이 불편했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만, 내 성향과는 맞지 않은 것. 늘 좋은 점을 먼저 찾으려 애쓰는 나였지만, 조금 변화했다는 걸 스스로 눈치챘다. 요즘에도 종종 안부를 전해오지만, 대화를 길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메시지를 한참 뒤에 본다거나 답을 늦게 한다거나 한다. 결국 마음에 없으니, 행동이 티가 나는 셈이다.
‘사람은 좋다’라고 생각했던 내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계에 선을 긋고 있다. 선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을 지키는 건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일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지만, 그들과 관계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사랑과 배려가 있는 적정한 선을 지키고 있지 아니한가. 결이 맞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든 인간관계에는 관계를 위한 ‘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에서도 선만 지키면 된다. 내가 스스로 그 선을 넘지 않으면 될 일이고, 상대방이 선을 넘어오면 그땐 그에 맞는 조처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사이에는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살면서 부딪히고 배우는 것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