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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서 찾아온 행운

돈 주고도 사지 못할 선물

by 셩혜

“너희 아직까지 여기 머무는 중이야?”

“네. 오늘 떠나요!”


팔라쪼 아드리아노의 세 번째 날. 아침 7시가 되자 교회 종이 은은하게 마을을 울린다. 어젠 분명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주말이라 그런가? 아니면 오늘 마을을 떠날 우리 부부에게 주는 선물인가. 조식 카페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아직 떠나지 않은 우리를 보면 내심 놀라는 눈치다. 글치, 여기 삼일이나 머무는 사람은 드물 테니.

호텔 앞 한 베이커리에서 제공되는 조식 - 크루아상과 커피 한 잔

여유 있게 조식을 먹고 마지막 산책까지 하며 이곳을 즐겼다. 남편은 호텔 입구로 차를 가져와 캐리어를 넣으며 떠날 채비를 했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중 어제 만난 한 아저씨가 ‘차오’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장을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호텔 건물 2층에 살고 있는 듯했다. 떠날 채비를 마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온 그는 SNS에 올라온 한 피드를 보여주며 ‘혹시 네가 이 사람이야?’하는 듯한 표정을 취했다. “어, 이거 내가 올린 건데!” 전날 밤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온 촬영지를 하나씩 찾아 올린 피드였다.

SNS에 올려둔 피드, 페데르코는 해시 테크 'Palazzoadriano'를 통해 이를 봤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SNS로 쉽게 친구가 되는 세상이니, 뭐 그리 신기하진 않았다. 이탈리아어로 몇 마디 하던 그는 갑자기 영어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페데르코 이름을 가진 그는 가방 디자이너였고 나이는... 음 추측하건대 30대 중반 정도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어떤 소개보다 솔깃한 것, 바로 자신이 영화 <시네마 천국> 속 어린 토토의 집주인이라는 것! 꺄---악!


그는 시간이 괜찮으면 집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흥분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귀신에 홀린 듯 좋다 하며 그를 따라갔다. 사실 토토 집으로 가면서 내심 걱정이 되긴 했다. ‘여행 초반이라 캐리어에 유로화가 넉넉하게 들어있는데, 이 사람이 우리를 헤치면 어떡하지?’라고. 이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의 발걸음은 그 어떤 날보다 가벼워 보였다. 나 역시 약간의 걱정은 되었지만, 차는 호텔 입구에 주차해뒀고, 마침 그 맞은편은 경찰서였다. 그러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하고 마음을 달랬다.

영화 <시네마 천국> 속에서 어린 토토가 살던 집은 꽤 허름하다. 토토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살고 있다. 그들이 살던 집은 햇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은 좁은 골목에 있고, 현관문은 그 골목보다 더 좁다. 실제로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골목은 관리가 되지 않은 지 잡초가 무성했고, 케케묵은 냄새도 났다. 나무로 된 문은 부분 부분 삭았고 페인터 칠한 곳도 뚝-뚝하고 떨어졌다.

어제도 이 문 앞까지 왔는데, 와-우 우리가 이 집 안을 보다니!! 집 앞에 도착한 후 페데르코는 문을 열어보라며 열쇠를 건넸다. 경계심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우리가 문을 열면, 그때 우릴 안으로 밀어 넣고 잠그면 어떡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땐 충분히 그럴만했다. 열쇠까지 건네며 문 열기를 재촉하는 바람에 남편이 문을 열었다. 오랜 시간 굳게 닫혀있었는지,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페데르코가 남편 뒤에서 문 여는 방법을 설명했고 나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페데르코 뒤에 무심한 듯 서있었다.

‘끼-익’ 문이 열렸다. 꽤 오래 방치된 듯한 가구가 이리저리 뒹굴었고 공기 중으로 먼지가 날아다녔다. 마구간처럼 퀴퀴한 냄새도 코를 찔렀다. 집 곳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영화 속 모습을 떠올렸다. 남편은 향수에 젖어 영화 속 장면을 하나씩 떠올리는 듯했고 페데르코는 이 집이 놓인 운명을 설명했다. 먼저 그는 영화 <시네마 천국>과 자신의 집에서 촬영된 부분에 대해 자부심은 대단했다.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를 얼마나 강조해서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그런 곳을 이탈리아 정부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속상해했다. 예전에 당국에서 6,000만 원을 준다고 팔라고 했다지만, 그렇게는 팔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며 이탈리아에서 배출한 최고의 영화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광을 가진 영화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영화 속 토토의 집 내부

페데르코의 넋두리와 상관없이 남편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페데르코는 우리 부부에게 포즈까지 요구하며 기념사진을 찍어줬고 나는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이라며 우리 셋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에 대해 소개했다. 우리가 이곳에 여행을 오고 3일이나 머문 이유, 남편의 직업 등등. 게다가 팔라쪼 아드리아노에 도착한 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다고 하니 친구가 하는 베이커리에 들러 홈 메이드 빵을 하나 선물해줬다(참고로 그 베이커리에는 케이크 같은 건 없었다) “맛있는 빵이니 여행하면서 먹어”하고. 베이커리 사장에게 우리 부부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사진도 같이 찍었다.


'이 집이 뭐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케이션 디렉터인 남편에겐, 자신의 인생영화가 <시네마 천국>인 이 사람에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선물 아닐까! 세상에 이런 인연이, 또 이런 우연이 있을까! 전날 호텔 계단에서 만난 한 아저씨(=페데르코), 그건 행운의 시작이었고, 우리 부부는 여행에서 잊지 못할 큰 선물을 받았다.


<시네마 천국> 박물관에 전시된 마을의 모형


다시 길을 나섰다. 페데르코가 선물해준 호밀빵의 구수한 향이 차 안 가득 퍼졌고, 우리 마음엔 팔라쪼 아드리아노가 선물해준 삼일 간의 시간이 영화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팔라쪼 아드리아노 아르베데르치(Arrveder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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